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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누리길

동작충효길 6코스 우애를 돈독히 다지는 동작마루길

  • 구간: 4.8km
    신대방삼거리역 - 빙수골 마을공원 - 갑을명가아파트 - 국사봉정상 - 상도근린공원관리사무소 - 봉현배수지 
    - 살피재 - 숭실대학교 - 현충원 상도출입문
  • 소요시간: 약 1시간 20분

우애를 돈독하게 다지는 공간 동작충효길 6코스인 동작마루길은 신대방삼거리역에서 출발해 국사봉 정상, 상도근린공원을 지나 살피재를 넘어 숭실대입구역을 지나는 길이다.

신대방삼거리역 1번출구에서 골목길에 들어서면 사람들의 삶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성대시장이 나타난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생선, 야채, 과일 등이 대부분이다. 사람들은 우주 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먹어서 에너지를 보충하고 그것으로 생명을 유지해야 한다. 사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는 행동이 곧 살기 위한 과정이고 그 대부분이 먹을 것을 구하는 행동들이다. 그 먹을 것을 통하여 정을 나누고  삶의 묘미를 느낀다.

사람들은 살아 가는 방법을 교육과 놀이를 통하여 배우고 익힌다. 그곳에서 먹고 마시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의미를 배워 나간다.  때로는 의식주와 관계없는 아름다운 미를 추구하기도 하고 자기가 손해를 보더라도 공동체를 위하여 함께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배우기도 한다.

동작동 산비탈에 늘어선 수많은 주택들 사이로 난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옥상 위에 만들어진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버스 정류장 하나 만들 공간이 없는 서울특별시에 사람들은 공기 좋은 농촌을 버리고 서울로 모여든다.  꿈과 희망을 안고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그들은 고향을 떠난 것이다.

삶을 상징하는 산비탈에 세워진 수많은 주택들을 지나가면 동작마루로 오르는 계단이 나온다.

육중한 생명을 지탱하고 쓰러지지 않으려고 대지를 움켜쥐고 있는 나무들을 보면 식물이나 동물이나 저절로  살아갈 방법은 없는 것 같다. 끊임없이 삶의 방법을 찾아서 대자연 힘과 중력을 견디고 이겨나갈 수밖에.

동작마루길 중간에는 효도전화의자가 있다. 일상에 바빠 마음은 있어도 부모님께 전화 한 통 못 드리는 현대인들, 부모님께 잠시나마 안부전화를 드릴 수 있게 전화 송수화기 모양을 형상화 한 효의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감성 시설물이다.

사자암

길 옆으로 사자암이 보인다. 국사봉 밑에 자리 잡은 사자암은 1396년 조선 태조 5년에 무학대사가 한양천도 과정에서 풍수 상의 이유로 창건했다고 한다.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서울의 풍수를 살펴보다가  현재의 만리동의 모습을 보니 밖으로 달아나려는 백호였다. 이에 무학대사는 백호의 움직임을 막아낼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만리동의 맞은편인 관악산에 호압사를 짓고, 사자형상인 국사봉에 사자암을 조성했다.

길 옆에는 시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비상 구급함이 설치되어 있다. 구급함이 잠겨 있어 어떻게 사용하는 것일까 의문을 가졌는데 구급함 밑에 적힌 전화를 걸어서 비밀번호를 알고 열어서 사용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양녕대군이 올라가 국사를 걱정했다는 국사봉 정상이다. 나지막한 산에 정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 길에서 500미터를 가면 양녕대군 이제 묘역이 있다. 이 묘역은 태종의 장남이며 세종대왕의 맏형인 양녕대군의 묘와 지덕사가 있는 곳이다.

국사봉 생태연못

다양한 생물동물이 서식할 수 있도록 조성한 공간인 국사봉 생태연못을 지난다. 연못에는 부처꽃, 노랑꽃,  창포, 버들유 등의 수생 식물이 심어져 있다.

국사봉

뒤돌아서 걸어온 국사봉 정상을 바라다 보니 그렇게 낮은 산도 아닌 듯싶다.

구암고등학교
성현 드림숲

갑자기 코끝을 진동하는 강한 향기의 꽃내음이 난다. 각 공간마다 색을 테마로 하여 붉은 정원, 향기 정원, 초록정원, 노랑 정원 5개의 정원을 조성하여 성현 드림숲이라 이름을 지었다. 성현 드림숲의 향기정원에서 향기로운 꽃 내음을 맡으며 길을 걷는다.

숭실대학교 아래 교차로에서 관악구 봉천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살피재는 옛날 이곳에 수목이 울창해 도둑이 많이 출몰해, 이 재를 넘기 전에 사람들이 ‘살펴서 가라’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또 고개는 높고  험하고, 백성들의 생활은 고달프고 어려움이 많아 슬프다는 뜻으로 ‘슬피재’라 하다가 음이 변하여 ‘살피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수목은 있으나 도둑이 들 정도로 울창하지도 않고 커다란 신작로에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살피재란 말은 전설로만 남아 있다.

안익태 흉상

숭실대학교는 1897년 10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배위량이 개설한 학당이 모체이다. 1905년 숭실대학으로  승격하여 한국 최초의 대학이 되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숭실전문학교로 개편되었다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며 자진 폐교 하였다. 1954년 서울에서 숭실대학으로 재건, 대전대학과 통합하여 교명을 숭전대학교로 변경하였으나 대전캠퍼스가 한남대학교로 분리되면서 지금의 숭실대학교로 되었다. 그 숭실대학교  정문을 지나 안익태 기념관에 들어간다. 평양 태생인 안익태는 한국환상곡을 작곡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한국환상곡 내에 합창이 애국가로 지정되면서 1977년 국립묘지 제2유공자 묘역에 묻혔다.

동작마루길의 종지는 1코스의 종착점이자 2, 7코스의 출발점인 현충원 상도 출입문이다. 이곳에서 다음 7코스의 시작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