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나 건국신화는 있다. 우리나라도 역시 신화가 있다.
천제의 아들 환웅은 바람, 비, 구름의 신과 삼천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신시를 세웠다. 어느 날 곰과 호랑이가 환웅을 찾아와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환웅은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면서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고 동굴 속에서 살라고 하였다. 호랑이는 며칠을 참지 못하고 동굴을 뛰쳐나가고 곰은 스무 하루를 견뎌 내 사람이 된다. 환웅은 사람이 된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고, 그 단군은 고조선을 세웠다.
이 단군신화는 삼국유사에 전한다. 그러나 신화를 역사로 오인한 일부 극렬 종교인들은 단군상을 파괴하고 문화재를 손상시키고 있다. 신화는 건국에 참여한 민족들이 당시의 건국의 역사를 상징적이고 관념적으로 표현된 사회적 의식형태다. 따라서 현재 전하는 단군신화는 사실이 아닌 상징이다.
단군신화에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태양신화와 토테미즘의 신화가 섞여 있다는 견해다. 즉 각기 다른 동물을 숭배하는 두 종족이 정치, 사회적으로 통합되면서 두 종족의 시조신화가 융합된 것으로 이해했다. 청동기 문화를 가진 새로운 지배자가 등장했고 그들이 곰과 호랑이를 숭배하는 몇 개의 종족이 결합하여 부족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을 반영한 것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오늘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제단, 단군을 모시는 참성단이 있는 인천둘레길 15코스 강화도 마니산길을 간다.
코스의 시작점은 화도공용버스터미널이다. 구래역에서 700-1번 버스를 타고 꽉 막힌 도로를 기어서 들어선 강화도는 생각보다 아늑했다.
마니산 입구에 들어선다. 붉게 물든 단풍 사이로 푸른 가을 하늘 아래 강렬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천부인 광장으로 들어선다.
천부인 광장에 전국체전 성화 기념 조형물이 꾸며져 있다. 전국체전의 성화는 1955년 제 36회 부산전국체전부터 항상 강화도 마니산에서 채화되었다. 최초의 성화봉송자는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이 맡았다. 전국체전 성화를 마니산 참성단에서 하는 이유는 우리 민족의 뿌리를 단군에서 찾기 때문이다. 또한 참성단의 미니어처도 제작되어 있다.
본격적으로 마니산을 오르려고 하니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는다. 성인은 2천원이다. 2007년 국립공원의 입장료가 폐지되었는데 국립공원도 아닌 이곳은 아직도 받고 있다.
등산로에 두 개의 갈림길이 있다. 가던 길을 계속 걸으면 계단로로 1004개의 계단을 밟고 올라서 마니산 정상에 오른다. 오른쪽 길로 접어되면 단군로로 372계단으로 완만하게 마니산 정상에 오른다. 우리는 내려올 때 무릎에 가해지는 충격이 더 심하기 때문에 경사가 심한 계단로로 올라서 경사가 완만한 단군로로 내려오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계단이 시작된다. 한 계단을 힘들게 오르면 또다시 계단을 마주한다. 기(氣) 받는 계단 등 갖가지 이름으로 등산객들의 힘을 북돋아 주지만 역시 계단은 계단이다. 하지만 힘이 들 작정을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중간 중간에 내려다 보이는 강화도의 탁 트인 정경을 바라보니 막혔던 가슴이 확 터지는 듯 하다. 강화도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시작된 섬이다. 단군 왕검이 참성단에 제를 올릴 때부터 몽골의 침입과 병인·신미양요, 강화도 조약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가 이곳에 있었다.
참성단이 보인다. 참성단은 철조망으로 막아놓아 갈 수 없다. 신화를 역사로 인식하는 일부 극렬 종교인들에 의해 문화재가 파손되어 막아 놓았다고 한다. 아쉽게 먼 발치에서만 바라만 본다. 참성단은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를 지내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높이 6m의 참성단의 축조 년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단군왕검이 쌓았다고 하니 4,000년은 족히 넘는 유물일 것이다.
누군가 예리한 칼로 두부를 베어 놓은 듯하다. 마니산의 기반암은 선캠브리아기 변성퇴적암인 운모편암과 중생대 쥬라기의 대보조산운동 시기에 관입된 화강암인 마니산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강암은 땅속 깊은 곳에서 압력을 받고 있다가 지표면의 침식으로 인해 압력이 점차 제거되어 암석의 부피가 점점 팽창하여 절리 형태로 만들어 진다. 마니산 등산로에는 풍화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다양한 수직, 수평절리가 노출되어 있다.
마니산 정상이다. 마니산 참성단이 바라보이는 마니산 정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다. 영산인 마니산의 정기를 받아 가려고 하는 것일까? 마니산은 인천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높이는 472.1m이다. 마니산은 한반도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백두산에서 마니산까지의 거리, 한라산에서 마니산까지의 거리가 완전히 같다. 정확히 거리를 잴 수 있는 과학적 기술이 없었던 고대 사람들이 이곳에 제단을 만든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마니산은 원래 마리산으로 불리었으며 마리는 고어로 가장 높은 땅의 머리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전 민족, 전 국토의 머리 구실을 한다는 뜻이다.
강화도는 북위 37.4도의 위치한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넓은 섬이다. 한국전쟁 이후 육지는 정전까지 차지한 영토대로 분할되었다. 하지만 해상은 미소 양국이 애초에 분할하여 놓았던 38도를 기준으로 휴전선은 그어졌다. 손에 잡힐 듯한 북녘이지만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먼 곳이 되어 버렸다.
정상에서 한동안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산을 내려온다. 내려가는 길도 두 개의 갈림길이 있다. 이번에는 언덕과 능선길이 이어진 단군로로 내려 간다.
인천둘레길의 스탬프를 찍는 곳이다. 인천둘레길을 14코스까지 완주했지만 이번 15코스에서 스탬프 찍는 곳은 처음 본 것 같다. 그 동안 유심히 보지 못했던 것일까? 인천둘레길에는 둘레길 코스마다 스탬프를 찍는 곳이 설치되어 있고 완주하면 인천시청에서 인천둘레길 완주 인증서를 준다고 한다.
계단로에 비해 쉬울 줄만 알았던 단군로는 처음부터 험난하다. 바위 끝은 바로 까마득한 절벽이고 안전하게 내려오려면 줄을 잡아야 한다.
험난한 만큼 하산하는 능선 중간 중간, 멋진 뷰가 나타난다. 붉게 물든 저녁 노을과 함께 미세먼지만 없었더라면 길이 간직할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단군로에도 계단이 많다. 계단이 372개라서 삼칠이 계단과 곰이 여자로 변해서 이름 붙여진 웅녀 계단 등, 험한 산길을 내려 왔지만 멋진 뷰에 의해 고단함을 잊었다.
아침 일찍 출발을 했는데 하산을 하니 해는 저물었다. 하지만 인천둘레길 중에 가장 먼 강화도 마니산길을 완주하니 마치 인천둘레길을 다 마친 듯 하다.
다시 버스에 올라 꽉 막힌 도로를 엉금엉금 기어 간다. 짧은 전철역까지 거의 한 시간이 걸려서 가는 동안 차창 밖을 바라 보았다. 물 좋고 곡식도 풍성했던 강화도에 왜 그토록 시련이 많았을까? 민족이 위기에 섰을 때마다 육지의 방패막이가 되었던 강화도의 유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행복한 세상을 누리게 된 것의 9할은 강화도에서 희생된 수많은 민초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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