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진주 반성에 온지도 벌써 보름이 되어간다.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만 일을 하는 생활에 점점 몸은 지쳐만 간다. 잠도 오지 않아 주변을 두리번두리번거리다가 우연히 걸어서 갈만한 정도에 경상남도 수목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곧바로 수목원에 도착했는데 경비원이 길을 막는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라고. 하는 수 없이 하루를 더 기다린 후에 비로소 경상남도 수목원에 갈 수 있었다.
수도권에 있는 수목원은 항상 사람이 많아서 조용히 산책을 하지 못하는데 이곳 경상남도수목원은 한적해서 마음에 든다. 또한 서울 근교에 있는 수목원은 인위적으로 만든 느낌이 나는데 이곳은 자연 그 자체였다.
11월말 단풍 철은 지났지만 그래도 빛은 남아 있다.
단풍은 나무가 생존을 위해 고안해 낸 작품이다. 일명 ‘떨켜’라고 불리는 기능으로 가을날 햇볕이 약해지고 기온이 떨어져서 더 이상 잎이 엽록소 작용을 할 수 없을 때 나무는 가지와 잎 사이에 얇은 막을 만들어 물과 영양분이 잎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는다. 단풍은 이 떨켜의 작용으로 나뭇잎이 붉은색이나 노란색으로 물드는 현상을 말한다.
봄, 여름에는 이파리를 이용하여 자신의 양분을 취하고 가을, 겨울에 필요가 없을 때 매정하게 자신의 생명을 지탱해 주었던 그 이파리를 버리는 것이다. 예전에 사람도 그랬다. 몽테뉴의 수상록에 보면 15세기 이전 프랑스에서는 56세가 되면 스스로 죽음을 택해야 했고, 우리나라 고려시대에는 예순이 되면 산속에 짐승 밥이 되도록 고려장을 했다.
이제 시대가 좋아져서 우리는 남은 인생을 이렇게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나의 생은 덤으로 사는 인생이다. 그러므로 사회에 폐를 끼치는 언행은 조심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나무의 윗동이 잘려나간 나무밑동이 여기저기 박혀있다. 가까이 가서 만져보니 나무가 아니라 나무 형태의 돌이다.
규화목은 "나무가 돌이 되었다"라는 뜻으로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으며, 나무의 원래 형태와 구조를 보존한 상태로 이산화규소(SiO2)가 목질부의 공극을 채워 형성된 나무화석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나무가 죽거나 가지가 땅에 떨어지면 미생물과 박테리아 활동에 의해 분해되어 없어진다.
그러나 늪지대, 갯벌의 습한 진흙 지대 또는 모래나 화산재의 날림에 의해 빠른 속도로 묻혀서 나무들의 조직 사이로 지하에서 용해되어 있는 광물의 침전 작용으로 인하여 원래 나무성분은 다 없어지고 나무 자체의 구조, 조직, 나이테 등은 고스란히 남게 되며, 이렇게 단단한 광물질로 구성물질이 바뀐 나무 화석을 규화목이라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기적적으로 우리는 공룡이 살았던 1억 5천만년에서 2억년이나 된 중생대의 생명의 화석을 본다. 우리 인류가 생성되기 훨씬 전의 우리의 조상일지 모르는 생명의 흔적을.
나무들은 가식을 떨쳐버리고 맨 가지를 드러낸다. 떨어진 낙엽은 수북이 쌓여 대지를 덮는다. 자동차의 소음도 없고, 사람들의 분주한 모습도 보이지 않는 오로지 숲과 자연만이 존재하는 그 길 사이로 다정한 연인들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간다. 새들이 노래하고 숲이 말을 걸어오는 이 길을 연인과 함께 걷노라면 없었던 정도, 사랑도 다시 피어날 것이다.
수도권 내 어느 산에 올라도 소음은 들려온다. 산 아래서 들려오는 자동차의 경적소리, 사람들의 통화소리, 음악소리, 비행기 소리, 웅웅 거리는 고압선 전기 소리에 우리는 이미 소음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의 모습도, 새와 짐승의 울음소리까지도 모두가 사라졌다. 이제 이곳에 나만이 남아있다. 마치 심심유곡에 나만이 움직이는 동물인 냥 나는 홀로 고독을 즐긴다. 생각마저 멈춘 채. 얼마 만에 느껴보는 고요의 행복인가?
대나무숲 관찰원에서 하늘을 뚫을 듯 솟아있는 대나무를 바라본다.
유학자들은 유난히 대나무를 좋아했다. 굵은 붓에 먹을 듬뿍 찍어 하얀 창호지에 휘갈기면 멋진 대나무의 그림이 된다. 유학자들이 대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대나무의 굽힐 줄 모르는 절개도 있지만 하늘을 뚫을 듯 솟구치기 위하여 끈기와 인내로 버텨온 일면도 있다.
중국의 모소라는 이름의 대나무는 4년 동안 3센티미터밖에 자라지 않는다. 하지만, 모소 대나무는 5년이 되면 매일 30센티미터씩 성장하며, 6주 만에 12미터 이상이 자라서 27미터 이상까지 성장을 하여 울창한 숲을 이루게 된다. 대나무가 6주만에 27미터까지 자랄 수 있는 것은 4년 동안 단단히 내린 뿌리를 완성시켜 내실을 다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궁화 공원에 올라 무궁화를 바라본다. 무궁화는 우리나라 꽃이다. 무궁화는 다른 나라처럼 인위적으로 국화로 정한 것이 아니다. 고구려 이전부터 외국에서는 우리를 무궁화의 나라, 근화국이라고 불렀다. 960여차례 외침에도 무궁화처럼 꿋꿋이 버텨온 나라이기에 끈질기다고 그렇게 불렀다. 무궁화는 꽃 중에서 유일하게 자가수정이 안 되는 꽃이다. 우리나라는 무궁화처럼 스스로는 잘 뭉치지 못하는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반면에 기존의 자신을 부정하여 좋지 않은 것을 개혁하는 계기가 되었고, 항상 외국과의 교류를 통하여 기술을 익히고 외세를 물리칠 수 있는 강인한 힘을 길렀다. 그러나 고려 말 원나라의 간섭을 받으면서 해상을 통한 무역을 금지시켰다. 그때부터 우리는 오직 우리 것만 고집하다가 결국 일본에 의해 멸망하게 되었다.
다시 우리가 세상의 이름을 떨친 것은 고려이전과 같이 무역을 시작할 때부터였다. 다른 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 우리 것으로 만들자 우리 가전과 휴대폰이 세계를 주름잡고, K-Pop 등 우리 문화가 세계를 휩쓸었다. 이제 다시 무궁화처럼 약진할 때가 왔다.
무궁화 동산에서 수목원 입구 메타세쿼이아 길을 바라본다. 남성의 굵은 힘줄과도 같은 강인한 나무기둥으로 창공을 뚫을 듯 즐비하게 서 있는 메타세쿼이아는 언제 봐도 장관이다. 특히 저녁 햇살에 비친 메타세쿼이아는 더욱 아름답다. 석양이 질 때까지 기다리려니 안내방송이 나온다. 동절기에는 5시까지 운영한다고.
내려오는 길에 산림 박물관에 들렸다. 삼림 박물관에는 산림과 임업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었다. 지금은 사라져간 다양한 생물의 표본과 화석과 함께 숲의 부산물로 만든 광주리, 죽제 반합, 부채, 연필, 필통, 반짇고리, 참빗, 밥그릇, 수저, 지게, 배, 탈, 목각인형 들까지도.
숲은 우리 생명이 살아 숨쉬는 터전이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기름진 흙은 숲에서 얻어지고 온 생명의 활력도 건강하고 다양한 아름다움도 모두 숲에서 비롯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한한 도움을 주는 숲을 하나, 둘 망가뜨리고 부수고 그곳에다가 짧은 생의 편의를 위해 골프장, 아파트 및 다양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든다.
그 결과 북극의 빙하는 녹아서 일부 나라는 물에 잠겨 없어지고, 일부는 수증기가 되어 지구 곳곳의 홍수를 일으키고, 산 속에 살던 생물들은 터전을 잃고 인간세계로 들어와 질병을 퍼뜨린다.
코로나도 그렇게 생겼다. 그 결과 사람들의 이동이 줄어들자 생태계가 복원되기 시작했다. 미세먼지도 없어지고 갠지스강의 물도 맑아졌다. 이제 코로나가 끝나도 생태계의 복원은 지속될까? 이렇게 큰 질병을 겪었는데 사람들의 자연파괴는 멈출 수 있을까?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을숙도 - 낙동강하류 철새도래지 (0) | 2020.10.21 |
---|---|
진주성 - 진주목사 김시민과 논개 (0) | 2020.10.19 |
부산 남포동과 광복동 빛축제 (0) | 2020.10.16 |
동백섬 산책로 - 갈맷길 700리 2-1 (0) | 2020.10.12 |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 세상 그 위를 날아 오르자 (0) | 2020.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