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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

서울둘레길 8코스 북한산코스(명상길·솔샘길·흰구름길·순례길)

총길이: 13km
시점: 형제봉입구(명상길 시작점)
종점: 백산주택(순례길 종점)
난이도: 상

● 명상길 구간

서울둘레길 8코스 북한산둘레길 8,7,6구간에 이어 북한산둘레길 5구간 명상길에서 시작한다.


명상길 구간은 상당히 가팔라서 둘레길이라기 보다 산행에 가깝다.

몇 걸음 오르다 보니 어떤 기운이 느껴지는 커다란 바위가 눈에 보인다. 아니나다를까 바위 밑에는 촛불이 켜져 있고 몇 가지 음식이 차려져 있다. 만물을 모두 신과 같은 존재로 보고 숭배하고 복을 빌며 자연을 겸허히 받아들였던 우리다. 특히 흔히 접하지 않는 기이한 형체의 바위나 나무에는 더욱 그러했다.

가파른 계단과 산길로 이어지는 이 길은 쉬엄쉬엄 걷는 명상길은 아닌 듯 쉽다. 몇 걸음을 걷지 않아서 숨이 턱에 차오른다.

초겨울이다.


찬란했던 세월의 흔적이

바닥에 나뒹굴어져 있다.


새로운 세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장독대 위에도
빈 나뭇가지 위에도
그렇게 세월은 내려 앉았다.


● 솔샘길 구간

북한산둘레길 4구간 솔샘길이다.

아직 지지 않은

단풍의 유종의 아름다움을 보며

솔샘길 구간을 걷는다.

솔샘길 구간 옆에는 소나무 숲으로 우거진 자락길이 있다.


자락길은 어르신 어린아이 모두 산책할 수 있는 오르막, 내리막이 없는 길이다.


솔잎에서 짙게 내뿜는 피톤치드를 가슴 깊이 들이키면 모든 피로가 한숨에 사라진다.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빈 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이 길에서
정현종 시인의 아름다운 시가
나의 가슴을 울린다.

 

바닥은 온통 단풍잎의

애절한 빛으로 가득하다.

북한산 생태숲

● 흰구름길 구간

 

북한산둘레길 5구간

흰구름 구간이다.

내가 상상한대로 모든 형상이
바람 따라 떠도는
흰구름을 보며
흰구름길을 간다.

 

잃은 것과 얻은 것
놓친 것과 이룬 것
저울질 해보니
자랑할게 별로 없구나
...
실패도 알고 보면 승리일지 모르고
달도 기우면 다시 차오느니..

          - 롱펠로우

 

서울 화계사 동종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승려장인 사인비구가 제작한 서울 화계사 동종이다. 사인스님은 승장의 맥을 이은 마지막 거장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쳐 예술적이며 전통적인 종을 만들었다.

화계사

화계사는 고려 광종 때 법인탄문대사가 인근에 창건한 보덕암을 조선 중종 때 여기에 옮겨 짓고 화계사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절이다.

청설모 한 마리가 도토리를 줍고 있다.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도토리를 입에 물고 바로 나무 위에 올라간다.

 

● 순례길 구간

서울둘레길의 북한산 둘레길 2구간 순례길 구간이다.
순례길 구간을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호국 영령들을 기리는 구간이다.

이준 열사의 묘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제의 외교권을 빼앗긴 이래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독립운동을 펼쳤다.

 

이준 열사는 1907년 7월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만국평화회의가 개최된다는 소식에 헤이그에 밀사로 파견되어 일제침략의 부당성을 해외만방에 알리고자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후 55년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죽는다하며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을 산다하는가, 죽어도 죽지 아니함이있고 살아도 살지아니함이 있다. 그릇 살면 죽음과 같지 못하고 잘 죽으면 영생한다. 살고 죽는 것이 다 나에게 있나니 모름지기 죽고 삶을 힘써 알지어다." - 이준

이준 열사의 말씀이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나는 과연 죽어있지 않은 삶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가인 김병로의 묘

"국가의 기본은 국민이요. 정치의 대상은 국민 복리에 있다. 위정자는 근검절약을 국민에게 몸소 보여주어야 한다,"   - 가인 김병로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 사건과 민족지도자에 대한 무료 변론을 맡았으며 광복 후에 초대, 2대대법원장 역임했던 김병로 선생의 묘다.

광복군 합동 묘소
성재 이시영 선생의 묘

이시영 선생은 임시정부시절 법무, 재무분야 임원이었고 이승만 정권 때 초대 부통령에 선임되었으나 이승만 통치에 부당함에 사직했다.


우리는 이미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를 가지고 있다.


비록 외세에 의해 나라를 되찾았지만 잃어버린 나라를 다시 찾았다.


광복(光復)군이란 이름도 광복절이란 이름은 그런 뜻이다.

1948년 이승만이 남한만이라도 단독 정부를 세우겠다는 정읍발언 때문에 통일을 못하고 남한만의 정부를 수립했을 때도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라 정부를 세운 것이다.


대한민국이란 국호는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의해 만들어졌고 우리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유일한 합법정부다.


그런데 요즘 갑자기 광복이라는 이름대신 건국이란 이름이 갑자기 등장했다.


그리고 국사교과서에 정부수립이란 말 대신에 국가 수립이라는 말로 바꾸려는 시도가 있다.


국가는 이미 있었고 그 국가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피를 흘리며 죽어갔는데 말이다.

그 동안 며칠 내린 비에 메마른 계곡에 물이 보인다.

 

4.19민주 묘역

인간은 권력에의 의지밖에 없다는 니체의 말이 생각난다.

 

나밖에 없다'는 지나친 권위의식과 권력에의 야망에 이렇게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희생이 되었다.

명상길, 솔샘길, 흰구름길, 순례길을 걸으면서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인생2막의 길을 준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