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마교 (2) 썸네일형 리스트형 경기삼남길 제7길 독산성길 - 독산성에 올라 주변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길 임진왜란 당시 권율은 광주 목사에 임명되어 전라도를 방어했다. 이후 수도 회복을 위해 2만 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북쪽으로 진격하여 수원 독성 산성에 진입해 진영을 구축했다. 왜군의 총사령관인 가토는 물 한 방울도 없는 독산성의 대규모 군대를 고립시키기 위해 성 주변을 둘러쌌다. 이때 가토는 실제로 물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권율 장군이 주둔하고 있던 곳으로 물지게를 보냈다. 이에 대해 권율은 물이 충분하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백마를 산 위로 끌고 올라와 흰쌀로 말을 닦는 척 했다. 이를 본 왜군은 산 꼭대기에서 물로 말을 닦을 만큼 물이 많다고 착각하고 철수했다. 이후 선조는 권율에게 독산성을 떠나 서울 근처로 이동하여 명나라의 남쪽 진출을 돕도록 명령했다. 권율은 대규모 부대의 이동을 은폐하기 위해 독.. 경기삼남길 제6길 화성효행길 - 정조의 효심이 깃든 길 조선시대 21대 왕인 영조의 아들이자 22대 왕인 정조의 아버지인 장조는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살 때 이미 한자 60자를 쓸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생후 100일 만에 어머니와 떨어져 궁녀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이후 병정놀이, 삼국지, 무술 관련 서적 등을 즐겨 읽으며 무예에 빠져들게 되었고, 이를 마땅찮게 여긴 영조는 점차 세자를 엄격하게 대하게 된다. 특히 세자가 13살이 되면서부터는 더욱 더 혹독한 질책을 받게 되었고, 대리청정을 시작한 15살 이후로는 본격적인 학대가 시작된다. 영조는 자신의 의견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 "네가 왕이냐?"라고 꾸짖었으며, 궁금한 점을 물어봐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며 꾸중하였다. 또한 날씨가 흐릴 때에..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