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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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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삼남길 제10길 소사원길 - 바른 정치의 이상이 담긴 대동법의 길! 임진왜란으로 인해 대부분의 경작지가 파괴되어 농사지을 땅이 부족했고, 그나마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은 대부분 부자 양반들의 소유였다. 일반 농민들은 양반들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수확된 농산물의 절반을 지주에게 지대료로 지불해야 했다. 또한, 남은 절반은 지방의 특산물로 바꾸어 국가에 세금으로 납부해야 했기 때문에, 농민들은 거의 이익을 얻을 수 없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 대신 민심을 수습하고 왜란에 대처하면서 백성의 지지를 받았다. 그는 백성들의 고통을 직접 목격하고 대동법을 실시하였으며, 중립 외교를 수행하는 등 조선 땅에 전쟁이 없는 세상을 꿈꿨다. 대동법은 조선 후기의 조세 제도로, 각 지역의 특산물을 공물로 제출하는 대신 미곡, 삼베, 무명 등의 작물 또는 돈으로 세금을 내는 정책..
경기삼남길 제9길 진위고을길 - 평택의 옛 중심지였던 진위고을을 지나는 길 임진왜란 중 조선군의 첫 승리는 옥포해전이었다. 이 전투는 1592년 5월, 경상남도 거제시 옥포동 앞바다에서 벌어졌다. 이순신과 원균이 지휘한 조선 수군은 일본 함대를 크게 무찌르며 승리를 거뒀다. 이 승리는 조선 수군이 남해안 제해권을 장악하기 시작한 첫걸음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원균과 함께 싸운 전투에서도 승전보를 단독으로 조정에 제출했다. 이순신이 계속해서 임금에게 단독으로 승전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원균의 공적에 대해 언급하지 않자, 원균은 이순신에게 불만을 품었다. 때로는 술에 취해 나이 어린 상관인 이순신을 찾아가 행패를 부렸다. 전쟁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원균은 이순신이 전쟁을 지속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졌다. 이순신은 이길 수 있는 전투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지만, 원균은 이..
경기삼남길 제8길 오산생태하천길 - 도심 속에 숨은 여유를 찾아가는 길 인생을 되돌아보면 어떤 나이에 꼭 한 번 경험해봐야 하는 것을 못하고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그 때 그것을 왜 하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오히려 앞으로 살아가며 꼭 해야 할 일들을 잊지 않고 해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우리는 언제나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아닌지는 나중에야 알 수 있지만, 과거를 후회하기보다는 미래를 바라보며 지금 이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도록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삶이란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되새기며, 매 순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독산성길의 종점인 은..
경기삼남길 제7길 독산성길 - 독산성에 올라 주변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길 임진왜란 당시 권율은 광주 목사에 임명되어 전라도를 방어했다. 이후 수도 회복을 위해 2만 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북쪽으로 진격하여 수원 독성 산성에 진입해 진영을 구축했다. 왜군의 총사령관인 가토는 물 한 방울도 없는 독산성의 대규모 군대를 고립시키기 위해 성 주변을 둘러쌌다. 이때 가토는 실제로 물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권율 장군이 주둔하고 있던 곳으로 물지게를 보냈다. 이에 대해 권율은 물이 충분하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백마를 산 위로 끌고 올라와 흰쌀로 말을 닦는 척 했다. 이를 본 왜군은 산 꼭대기에서 물로 말을 닦을 만큼 물이 많다고 착각하고 철수했다. 이후 선조는 권율에게 독산성을 떠나 서울 근처로 이동하여 명나라의 남쪽 진출을 돕도록 명령했다. 권율은 대규모 부대의 이동을 은폐하기 위해 독..
경기삼남길 제6길 화성효행길 - 정조의 효심이 깃든 길 조선시대 21대 왕인 영조의 아들이자 22대 왕인 정조의 아버지인 장조는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살 때 이미 한자 60자를 쓸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생후 100일 만에 어머니와 떨어져 궁녀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이후 병정놀이, 삼국지, 무술 관련 서적 등을 즐겨 읽으며 무예에 빠져들게 되었고, 이를 마땅찮게 여긴 영조는 점차 세자를 엄격하게 대하게 된다. 특히 세자가 13살이 되면서부터는 더욱 더 혹독한 질책을 받게 되었고, 대리청정을 시작한 15살 이후로는 본격적인 학대가 시작된다. 영조는 자신의 의견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 "네가 왕이냐?"라고 꾸짖었으며, 궁금한 점을 물어봐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며 꾸중하였다. 또한 날씨가 흐릴 때에..
삼남길 경기5길 중복들길 - 탁트인 중복들을 가로지르며 걷는 길 50년 전만해도 대한민국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기아에 시달렸다. 당시에는 쌀이 매우 귀했기 때문에 많은 가정에서는 자녀의 친구들에게 껍질을 벗긴 소나무인 송기나 쌀겨죽을 대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1970년대 초, 허문회 교수가 필리핀에서 도입한 자포니카와 인디카 교배종인 통일벼를 개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 통일벼를 처음 시험한 장소가 바로 중복들길의 출발점인 서호 근처의 농촌진흥청 시험장이다. 이후 통일벼는 국내 쌀 생산량 증가에 큰 역할을 하면서 대한민국이 식량 자급자족 국가로 나아가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이러한 배경을 이해하면 서호를 바라보는 느낌이 다를 것이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추운 겨울날, 하얗게 쌓인 눈 위를 밟으며 우리는 경기 삼남길 제5길 중복들길을 걸었다. 중복들길은 경기도..
삼남길 경기4길 - 백로와 오리가 노니는 서호천을 따라 걷는 길 마릴린 먼로는 일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던 중 기자회견에서 "화장실에서 소변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녀의 이 발언은 당시 큰 화제를 모았으며 일부 사람들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였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녀의 유머감각을 엿볼 수 있는 농담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언론은 이 발언을 그녀의 사생활과 인격에 대한 비판과 조롱의 소재로 이용하기도 했다. 먼로의 이 발언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건강의 기본인 잘 먹고 잘 배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시켜 주는 일화로 기억되고 있다. 오늘은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화장실 문화전시관이 위치한 해우재를 경유하는 경기 삼남길 제4길 서호천길을 걸어보자 경기 삼남길 제4길 서호천길은 수원의 역사와 자연을 함께 즐길 수 ..
삼남길 경기3길 - 옛 마을의 고즈넉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길 인구는 줄어들고 아파트 공급률은 이미 포화상태인데도 집이 부족하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빈집은 많은데 집이 없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다. 환경주의자들은 아파트 건설을 중단하고 주택 가격을 낮춰 다주택자들이 가진 빈집을 집 없는 자가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한다. 주택 가격이 하락하면 부동산 대출로 집을 산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경제 성장률도 낮아져 경제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반대 의견이 강하다. 이러한 모순은 우리 사회에 깊숙히 박혀 있는 성장중독증 때문에 발생한다. 삼남길 구간은 여러 번 갔었지만 매번 건설 현장 때문에 길이 바뀌어 헷갈린다. 백운호수에서 출발하여 모락산 고개를 넘어간다. 9월 말이 되어도 햇빛은 여름과 다름없이 뜨겁다. 백운호수를 지나 모락산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