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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주길

삼남길 경기5길 중복들길 - 탁트인 중복들을 가로지르며 걷는 길

50년 전만해도 대한민국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기아에 시달렸다. 당시에는 쌀이 매우 귀했기 때문에 많은 가정에서는 자녀의 친구들에게 껍질을 벗긴 소나무인 송기나 쌀겨죽을 대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1970년대 초, 허문회 교수가 필리핀에서 도입한 자포니카와 인디카 교배종인 통일벼를 개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 통일벼를 처음 시험한 장소가 바로 중복들길의 출발점인 서호 근처의 농촌진흥청 시험장이다. 이후 통일벼는 국내 쌀 생산량 증가에 큰 역할을 하면서 대한민국이 식량 자급자족 국가로 나아가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이러한 배경을 이해하면 서호를 바라보는 느낌이 다를 것이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추운 겨울날, 하얗게 쌓인 눈 위를 밟으며 우리는 경기 삼남길 제5길 중복들길을 걸었다.

 


중복들길은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에 위치한 서호공원에서 시작한다. 공원 내에는 서호라는 큰 호수가 있으며,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가족 단위로 방문하기 좋다. 하지만 칼바람이 불어대는 추운 날씨 탓에 인적은 드물었고 대신 백로, 가마우지, 청둥오리 등 새들이 얼음이 덮인 호수 위를 거닐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국립식량과학원 작물 시험장


서호에서 항미정으로 가는 길에 있는 소나무는 1831년 당시 화성유수였던 박기수가 현재의 자리에 건립하면서 심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축만제

서호의 또다른 이름인 축만제는 조선시대 정조대왕이 1799년에 건설한 대형 저수지로, 당시로는 국내 최대 규모였다. 이에앞서 정조는 1795년에는 장안문 북쪽에 만석거를, 1797년에는 화산 남쪽의 사도세자 묘역 근처에 만년제를 각각 축조했다. 대규모 수리시설과 둔전개간이 성공하자 정조는 더 큰 규모의 축만제를 조성하였으며, 이를 통해 얻은 수익금은 화성을 수리하는 데 사용되었다. 축만제는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화성의 서쪽에 위치해 있어 서호라고 불리기도 한다.

 

서호의 수문 옆에는 항미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이는 중국 송나라 시대의 유명한 시인이자 관료인 소동파(소식)가 항주의 태수로 지낼 때 지은 시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소식은 항주를 대표하는 절경인 서호가 서시의 눈썹처럼 아름답다고 표현했는데, 여기서 영감을 얻어 '향미'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현재의 항미정 현판은 2019년 12월에 새로 제작하여 달았다.


항미정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중복들길이 시작된다. 눈이 쌓인 서호천의 하천길은 겨울의 분위기를 더욱 느끼게 해준다.

 


서호천은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숙지산에서 발원하여 권선구 평동에서 황구지천으로 흘러드는 총 길이 9.8km의 지방하천이다. 예전에는 오염이 심각했지만 수원시의 생태하천 복원 사업과 주민들의 노력으로 수질이 많이 개선되었으며, 이로 인해 물고기와 새, 곤충 및 식물 등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는 생태계가 형성되었다. 특히, 서호천은 겨울철새들이 머무는 장소로도 유명한데, 백로, 청둥오리, 왜가리 등의 조류를 쉽게 볼 수 있다.

 

수인선 협궤열차 선로터

평고교를 지나면 옛 수인선 협궤열차 선로가 있었던 자리를 만나게 된다. 수인선 협궤열차는 1937년에 개통되어 1990년대까지 수원과 인천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이 협궤열차를 통해 서해 바다의 풍부한 소금이 내륙 지방으로 운송되었고, 내륙의 곡물도 이 수인선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1945년 해방 후에는 조선의 곡물이 더 이상 일본으로 반출되지 않았지만, 이후 도로 교통이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우리나라 유일의 협궤 열차였던 수인선은 1995년 12월 31일 운행을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공군예비군 훈련장을 지나면 드넓은 중복들 길이 나온다. 끝 없이 펼쳐진 넓은 평야 저 멀리 수원 시내가 가물가물 보인다.

배양교

마침내 중복들길의 종점인 배양교에 도착했다.


중복들길은 전체 길이가 약 8km 정도이며, 소요 시간은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코스는 대체로 평평하고 걷기에 편했으며,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자연 경관과 역사 유적을 함께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