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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

인천둘레길 11코스 연탄길 - 달동네와 골목길을 추억하는 길

땅이 줄어들고 있다. 녹지와 평야는 초고층 아파트와 상가들로 바뀌었다. 그곳에 투자한 부자들은 더더욱 부자가 된다. 한편 예전의 화려한 도시는 구도시가 되고 낙후되고 범죄의 소굴이 된다. 그래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30년 정도만 버티면 개발이 되어 웬만큼은 산다.  그러면 예전에 산비탈에 지어진 동네들은 어떤가? 그곳은 청소차도 들어가기 힘든 좁은 골목, 쓰레기로 뒤덮여 악취가 나는 그곳에는 진짜 가난한 사람들이 산다. 신도시가 개발되면 될 수록 그들은 더욱더 가난해져서 갈 때가 없다. 우리는 그곳을 달동네라 부른다.

 

오늘은 신도시의 화려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60~70년대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동네 길을 간다.

도원역 - 인천세무서 - 금창동행정복지센터 - 창영초등학교 - 배다리 헌책방거리 - 송현근린공원 - 수도국산달동네 박물관 - 동인천역 북광장

 


출발은 도원역에서 시작한다.  도원역을 왼쪽으로 끼고 철길을 건너면 가파른 골목길을 마주한다. 이곳이 골목길과 달동네를 추억하며 걷는 길인 연탄길의 시작이다.

 

 

산비탈에 세워진 다 쓰러져가는 집들과 그 뒤로 보이는 초고층 아파트들이 대조적으로 보인다.

 


정부와 건설사들은 시급히 우선 개발하여야 할 빈민가는 나 몰라라 놔두고 왜 푸른 녹지와 평야에 신도시를 세우고 개발을 할까? 그것은 싼 값으로 토지를 매매하여 고수익을 올리려는 개발업체와 그것을 토대로 거대한 정치자금이 오가는 구조적 모순에서 나온다.

 


건설사들은 부동산PF를 통하여 미래 현금흐름을 담보로 무일푼으로 거액의 돈을 빌린다. 그 돈으로 초저가로 땅을 매입하여 놓고 아직 짓지도 않은 건물에 고액의 분양가로 분양신청을 받는다. 건설사는 분양 대금을 받아서 푼돈으로 엄청난 수익을 거둔다. 국회의원들과 지차체장은 건설사들과 짜고 인허가를 내주면서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는다. 그러한 구조로 돈이 되지 않는 산비탈 달동네는 개발이 늦춰지고 또 늦춰진다.

 

 

빈민 지역은 언제 개발될까? 빈민가는 토지매수 가격이 다른 곳에 비해 최대로 낮추어 진 시점에 지차체장들과 국회의원들은 도시재생사업이라고 생색을 내면서 개발은 시작된다.

수많은 애환이 서려있는 달동네도 그렇게 언젠가는 하나 둘 사라진다.

 


길을 걷다가 홍예석으로 만든 근세 양식의 건물이 보인다. 담벼락에는 인천의 3.1운동 발상지란 문구가 써있다. 이곳은 창영초등학교다. 창영초등하교(구)교사는 인천 최초의 인천공립보통학교라는 이름으로 순수민족자본으로 1907년 12월 9일 설립되었다. 3.1운동 당시 인천 만세운동의 진원지가 되어 시위를 벌이다 투옥되는 등 격동의 역사를 거쳤다.

 


배다리 삼거리로 들어선다. 예전에 이곳에는 수문통 갯골과 이어지는 큰 개울이 있었고 밀물 때면 바닷물이 드나들었다. 배다리라는 이름은 배를 대는 다리가 있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배다리 삼거리에서 우각로로 접어들면 2층짜리 붉은 벽돌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그곳에 앞에는 로봇 태권브이에 나올듯한 깡통로봇이 고개를 숙인 체 서있다.

 


이곳이 옛 인천 양조장 건물이다. 이곳에서는 1926년부터 약 70여년동안 인천의 명물인 소성주를 생산했다. 소성주는 숙성시간과 담금 횟수를 늘려 부드럽고 톡 쏘는 탄산의 상쾌한 청량감이 느껴지며, 특유의 감칠맛이 매력적인 막걸리다.

 

 

그 옆에 드라마 '도깨비'에서 보았던 노란색 한미서점이 보인다. 그 옆에 배다리 헌책방 골목이 있다. 헌책방 골목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자리에 리어카와 노점상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형성되었다. 한 때는 40여곳의 헌 책방들이 밀집해 전성기를 이루기도 했다. 배다리 헌책방에서 번화가 서점에서 느낄 수 없는 고서점 특유의 향기를 맛볼 수 있다.

 

배다리 전통거리 굴다리 안에 중고사장이 열렸다. 요강, 재봉틀, 화로, 라디오, 요술램프, 도자기 등 없는 게 없다. 모두 지금은 사라진 옛 물건들이다. 

 


송현근린공원에 들어선다. 송현근린공원은 수도국산에 들어선 공원으로, 1996년 공원 조성 사업에 착수하여 2003년 9월 완공되었다. 면적은 7만 2,663.6㎡이다. 수도국산의 원래 이름은 송림산 또는 만수산이었는데 1906년 인천과 노량진을 잇는 상수도 공사가 착수되어 1908년 이곳에 송현배수지가 준공되자 그때부터 수도국산이라 불리기 시작하였다. 공원 내에 있는 송현배수지는 인천 최초의 상수도시설로 2003년 10월 27일 인천광역시문화재자료 제23호로 지정된 바 있다.

 


공원에는 2005년 10월 개관한‘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도 있다. 건축총면적 1,950.85㎡, 지하 1층·지상 1층 규모의 박물관 내부에는 1960~1970년대 수도국산 달동네의 옛 모습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는데, 전시된 인물 모형들은 모두 달동네에 살았던 실존인물의 모습 그대로 만들어졌다 한다. 예전 학창시절로 돌아가 학생복 차림으로 사진도 찍어보고 그 시절의 문구점, 다방, 복덕방, 솜틀집, 이발소, 상점들도 들러본다. 

 

 


박물관 밖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말 타기도 해보고 두레박으로 물도 길어본다. 어린 시절 공동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다가 두레박을 빠뜨린 기억이 눈에 선하다.

 

 


종착지인 동인천역에 도착했다. 고층빌딩과 다 쓰러져가는 판자집을 오갔다. 그곳에는 초고속 성장에 뒤안길에서 잊혀져 가는 지난날의 추억도 보았다. 모두가 가난했던 그 때 그 시절에는 없는 살림 속에서도 나보다 조금 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나눠주고 아픔도 같이했다. 이제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지금 그 때보다 경제는 괄목하게 성장했다. 그러나 마음은 그 시절보다 더 강퍅해졌다. 다시 예전처럼 정이 있고 이웃끼리 다정한 그런 선진국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오늘 길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