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기누리길

[수원팔색길]6색 수원둘레길 - 지지대비에서 수원여대사거리까지

수원시의 경계를 걷는다.

세상에는 이상한 상태가 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 이것을 우리는 경계라 부른다. 양쪽 중앙에서 가장 많이 떨어진 것, 0.000000001만 더 내디뎌도 이쪽이고 되고 저쪽이 된다. 그곳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땡 중이 대사가 되고, 산업혁명, 자유혁명, 디지털 혁명, 모든 것이 그 경계에서 이루어졌다. 무한한 가능성의 길, 난 오늘 그 길을 걷는다.

수원의 경계를 걷는다. 수원둘레길의 총 길이는 60.4km다. 전체를 다 돌려면 하루 밤낮을 돌아도 모자란다.  그래서 길을 20km씩 셋으로 쪼갰다. 그 길의 첫 번째 길, 지지대비에서 수원여대사거리까지 그 길을 간다.

지지대비

첫 번째 길은 의왕시와 수원시의 경계에서 시작한다. 지하철 4호선 인덕원역에서 버스 777번을 타고 그 경계에서 내렸다.

그 경계에 지지대비가 있다. 지지대비는 조선 정조의 지극한 효성을 추모하고 본받기 위하여 순조 7년(1807)에 화성어사 신현이 건립하였다. 정조가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현륭원 전배를 마치고 환궁하는 길에 이 고개를 넘으면 다시는 현륭원이 있는 화산을 바라볼 수 없기에 이곳에 행차를 멈추게 하고 현륭원 쪽을 뒤 돌아 보면서 떠나기를 아쉬워하였다고 한다.  이때 정조의 행차가 느릿느릿 하였다 하여 이곳의 이름을 한자의 느릴 지(遲)자 두 자를 붙여 지지대(遲遲臺)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모락산
의왕컨테이너기지

경계 너머로 의왕시의 모락산이 보인다. 또한 고개너머로 의왕 내륙 컨테이너 기지가 보인다. 의왕 컨테이너 기지는 철도와 자동차의 교통이 편리하여 수도권의 화물의 보관·하역·운송·배송을 담당하는 물류거점이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백제, 신라와 고려까지 무역을 통해 부강한 나라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고려 말 원에 의해 해상무역이 봉쇄되었고 나라는 팍팍해졌다. 이런 백성의 분노를 이용해 건국된 조선 또한 오직 문인만을 우대하였고 그 결과 나라를 패망의 길로 이끌었다.

60년대 초까지 세계 최빈국의 불명예를 안은 우리나라는 수출물류를 통해 다시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요즘 일어난 한일갈등, 한중갈등 등 물류관련 사태를 돌아보면서 어떻게 정부가 슬기롭게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지 걱정이 앞선다.

▲장고개 구름다리 

이곳은 과거 의왕시 주민들이 장을 보러 다니던 장고개란 고개였다. 시장이란 제도가 생기기 전에는 우리는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야만 했다. 언제부터인가 물물교환이 생기고, 다시 화폐가 발명된 후에야 지금과 같은 시장이 생겼다. 지금은 그 시장으로 향하는 장고개에 덕성봉과 망치봉을 연결한 육교가 놓여있다.

경계는 대부분 높은 벽과 울타리,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원둘레길도 예외는 아니었다. 쉽게 생각하고 길을 떠났는데 이번에는 덕성산을 오른다.

▲덕성산에서 바라본 영동고속도로

국토의 70%가 산인 우리나라는 보이는 것이 모두 산이다. 우리는 산이 없는 외국처럼 굳이 집에다가 정원을 꾸밀 이유가 없다. 집에서 몇 발자국 걸음 걸으면 모두가 내가 갈 수 있는 열린 정원이고 숲길인 것을.

▲ 율전동

산을 내려오자 이번에는 아파트 숲이다.

아파트 옆에는 작은 밭들이 있다. 그 밭에서 농부들이 가을걷이에 분주하다.

논에서는 허수아비들이 있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은 그리 똑똑하지 못한 것 같다. 실체보다는 보이는 형상만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한다. 그래서 허상만 보는 참새들을 속이기엔 허수아비가 제격이다. 물론 요즘 참새는 많이 똑똑해져서 잘 속지 않지만 인간은 아직도 보이는 것, 들리는 것만 보고 잘 속는다.

▲밤꽃 청개구리공원

수원 청개구리는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1980년 일본학자 구라모토가 수원에서 발견했다. 수원 청개구리는 일반 청개구리와 달리 짝짓기 때가 되면 '꽥꽥' 소리를 내지 않고 '윙윙' 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이 밤꽃 청개구리 공원이다.

율전동의 이름은 밤율(栗) 밭전(田)자를 쓴다. 그래서 밥밭이다. 밤밭은 말 그대로 밤나무가 많아 지어진 이름이다. 밤밭이라고 부르게 된 연유는 300여년 전 파주 염씨, 강릉 유씨, 안동 장씨 3성이 자리잡은 뒤부터 마을에 밤나무가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들 3성은 이곳에 자리잡은 뒤 번성해 지금까지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다. 

▲ 왕송호수 레이바이크

왕송저수지는 1948년 1월 부곡역 남쪽에 조성된 저수지로 넓이는 1.65㎢, 제방길이는 640m다. 수면이 넓어 호반의 정취를 느낄 수 있으며, 붕어·잉어 등이 많이 잡혀 낚시터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부곡 하수종말처리장이 가동되면서 수질개선이 이루어져 왜가리·두루미· 청둥오리·원앙(천연기념물 327) 등 각종 철새들이 많이 찾고 있다.(두산백과)

다시 산길이다. 이번에는 칠보산이다. 7가지 보물을 간직한 산이라고 해서 불려진 칠보산은 낮은 산세로 산책삼아 등산하기에 적당한 코스다.예로부터 산삼, 맷돌, 잣나무, 황금수탉, 호랑이, 사찰 , 장사, 금의 8가지 보물이 많아 팔보산으로 불리다가 황금수탉이 없어져 칠보산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 보물을 가진 바위(가진바위)

이 바위는 중생대 쥬라기 북운모 화강암(화성암)으로 약 1억년에서 2억년 사이에 마그마가 지하 깊은 곳에서 천천히 식어서 형성된 암석으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옛날에 어느 석공이 이 바위에 보물이 있다는 말을 듣고 바위를 자르려 하였다. 석공이 정으로 바위를 쪼는데 갑자기 비바람이 불더니 벼락이 떨어졌다. 석공은 벼락을 맞아 죽고 그 때 잘린 자국은 바위 가운데 또렷하게 남게 되었다고 한다.. 이 바위는 모두 갖춘 바위라 하여 '가진 바위' 또는 위아래가 같다하여 '같은 바위'라고도 부른다.

▲ 칠보산 정상

해발 239m의 칠보산 정상이다.  낮은 산이나 높은 산이나 산 정상에는 언제나 정상 표시석이 있다. 그 정상에 오르고 그 표지석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제나 뿌듯한 감정을 느낀다. 무언가 목적을 달성했다는 느낌에. 그러나 나는 지금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나의 목표는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수원둘레길의 완주에 있기에 그렇다. 그러나 그 완주라는 목표도 허상에 불과하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의 행복을 위하여 나는 지금 그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

▲ 화성시 전경
▲ 수원시 전경

경계에 서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 멀리 있는 것일 수록 더 멋지고 가고 싶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았을 때 보이는 추하고 지독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경계에는 무엇인가 두려운 것이 있다.


때로는 장승을 세우고 때로는 군사를 배치해 두려운 것을 몰아내려 한다.

갑자기 가는 길이 없어졌다. 돌아가라는 팻말과 함께. 갈 수 없는 길은 미련을 갖지 말고 돌아서 가라는 생의 가르침을 주는 듯.


그래도 방향은 잃지 않았다. 가고자 하는 곳을 주시만 하면 언제나 그곳으로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간다.

돌아서 가는 길이 때로는 더 멋질 수도 있다.

 

황금 벌판을 만날 수도 있고 원두막에서 쉬면서 옛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그래도 결국 만날 것이다. 방향만 잃지 않는다면.

▲ 천년초 재배지

천 년을 살고자 온갖 수단을 다해도 결국 우리의 인생은 갈 곳이 정해져 있다.


저 뒤에 보이는 곳이 그 것을 말 해준다.

수원여대 사거리

수원시와 화성시의 경계를 걸었다. 수원과 화성을 무한히 오고 가며 경계를 걸었다.  수원여대사거리 지지대비에서 수원여대사거리까지 경계의 1/3을 걸었다.  아직도 2/3의 길을 남겨둔 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