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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누리길

[수원팔색길]4색 여우길 - 녹음이 푸르는 길

수원시는 8의 긍정적인 의미를 담아서 수원 곳곳을 연결하여 수원의 역사, 문화,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거리를 만들었다.

이번 길은 수원팔색길의 4색 여우길이다. 여우길은 엣날에 여우가 많이 살았다는 데서 유래한 길이다. 여우길은 광교저수지와 원천유원지를 연결하는 길로 광교공원의 산책로와 음악분수 등을 즐기며 원천유원지의 과거 추억과 새롭게 조성된 광교 택지지구위 녹지축을 연결한 12.5킬로미터의 길이다.

어린 시절 동네에는 밤마다 골짜기에서 여우 우는 소리가 들렸다. 밤늦게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항상 그 골짜기를 지나쳐야 했는데 그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동네에는 어떤 어른이 밤길을 지나다가 여우가 나타나 사람의 키를 몇 번 뛰어넘고 여우에 홀려 밤새도록 산길을 헤매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왔다는 소문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 두려움은 호기심으로 바뀌었고 언젠가 한번 여우를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으나 한 번도 동네에서 여우를 본 적은 없었다. 어릴 적 추억을 생각하며 여우길을 간다.

경기대학교 수원캠퍼스

그러나 이번 여우길은 어디선가 여우가 튀어나올 만한 골짜기나 깊은 산속을 지나가는 길이 아니다. 사람들이 사는 주택들과 하천을 따라 걷기도 하고, 작은 동산의 오솔길을 걷는 친근한 길이다. 그 길은 경기대학교 수원 캠퍼스 정문에서 시작한다. 경기대학교는 1947년 조양보육사범학교로 설립하여 1963년애 정규대학으로 승격하여 경기대학으로 개칭하였다. 이곳 수원 캠퍼스는 1979년에 조성되었고 1984년에 종합대학교로 승격되었다.

두렝이고개와 전나무배기

경기대 정문 앞에 두렝이 고개와 전나무 배기라는 지명이 있다. 전나무 배기는 이의동에 있는 자연마을로 현 경기도 입구의 지역이다. 이곳에 전나무가 많이 있었던 지역이라 이런 이름으로 불린다고 한다. 두렝이 고개는 광교 환승주차장에서 경기대로 올라가는 고개로 일명 지고개라고 불리기도 한다. 

경기대 후문 뒤 거리

경기대 정문을 통과하여 후문으로 나간다. 여우길에서 차를 만날 수 있는 구간은 오직 여기 300미터 남짓한 길이다. 이 길은 사람만 갈 수 있는 곳이다. 요즘에 사람이 차보다 우선인 길이 많이 생겨났다. 정말 다행이다. 수원의 하천 길도 오직 사람만 다닐 수 있다. 이곳에서는 자동차의 매연 대신 향기로운 꽃 내음을 맡을 수 있고 자동차 경적대신 졸졸졸 흐르는 물 소리가 들린다. 

▲ 혜령군 이지의 사당과 묘

태종의 아홉 번째 왕자이자 세종의 이복동생의 묘가 보인다. 조선은 백성의 나라가 아닌 왕의 나라이었다. 역사의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왕자의 무덤을 이렇게 크게 해 놓았다. 우리는 중국과 같이 거대한 대륙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단 몇 평의 집 한 채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부지기수 이었지만 조선의 국토는 양반과 왕족들이 대부분 차지했다. 이제 양반이나 왕족은 없어졌지만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직 왕족 흉내를 내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국토의 대부분과 수백 채의 아파트를 차지하고는 서민들의 푼돈을 앗아가고 있다.

▲ 수원 광교 박물관

혜령군 이지의 묘 옆에는 수원광교 박물관이 있다. 수원광교박물관에는 광교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광교역사 문화실에는 광교 신도시 조성에 따라 출토된 발굴 유물들과 도시 변천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개발로 훼손되는 어메니티 자원이 보존되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쓰던 지휘봉(좌)와 김대중 대통령이 선물한 시계와 녹차세트(우)
노무현 대통령이 보낸 전통주(좌)와 김영삼 대통령이 보낸 찻잔  세트
노태우 대통령이 보낸 분청사기 세트(좌)와 윤보선 대통령이 보낸 편지(우)


소강 민관식실에는 국회의원, 문교부장관, 대한 체육회장을 역임한 소강이 기강 민관식이 기증한 정치, 사회 문화, 체육의 다방면에 걸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평소 수집광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다양한 분야의 수집품들을 보면 정말 놀랄 만하다. 그가 수집하여 기증한 것에는 올림픽 관련 기념품, 박정희 대통령이 쓰던 지휘봉까지 수집했고. 또한 김대중, 노무현, 김영삼, 노태우, 윤보선 등 역대 대통령들이 보내온 다양한 물건도 수집했다. 소강 민관식은 화려한 경력만큼이나 만난 사람들도 다양했다. 역대 대통령과 정 관계, 스포츠 계 인사를 포함한 국내외 유명인사까지 교류의 폭이 참 많았다. 그리고 어떠한 인연이라고 소중하게 여겨 소중히 간직했다.

▲ 사운이 사력을 다해 지킨 독도(좌)와 난중일기(우)

사운 이종학실에는 우리 역사를 지키기 위한 사료 수집과 연구에 평생을 바친 역사학자 사운 이종학이 기증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일제의 우리 역사 지우기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가 남아 있는 것은 그 동안 우리 의 역사를 지키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우리 역사를 지키기 위한 자료수집과 연구에 평생을 바친 역사학자 사운 이종학이 있다. 사운이 기증한 조선시대 고서, 고문서, 고지도와, 독도관련 자료, 일제 강점기 자료, 고향인 수원 관련 자료 등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어 사운 이종학이 우리에게 남기고자 한 귀중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되돌아 보게 한다.  사운은 난중일기를 수백 번 읽고 백의종군 길을 따라 걸으며 이순신의 삶을 가슴속에 새겼다. 사운 이종학에게는 이순신의 연구가 연구대상의 호기심이 아니라 이순신이 삶의 모델이자 롤 모델이자 신앙이었다. 이종학은 이순신과의 만남으로 우리역사와 영토를 지키기 위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수원은 물의 도시라는 이름답게 수많은 하천이 도심 곳곳에 흐른다. 그중 원천리천, 가산천은 신대호수로 흘러 들어가고, 쇠죽골천, 성죽천, 선의천, 산의실천은 원천호수로 흘러들어간다. 한 때 원천유원지라고 불리었던 원천호수는 10여년 전부터 안양이나 수원에 살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옛 추억에 잠길 것이다. 다양한 레저시설과 놀이공원이 있었던 원천 유원지는 연인이나 친구들과 함께 사랑과 우정을 쌓던 추억의 장소였다. 

원천저수지는 일제시기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 때 향락지로만 알고 있던 그 저수지가 이제는 도시의 즐거운 일상을 담은 생동감 넘치는 호수공원으로 재탄생되었다. 원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 사이에 끝없이 이어지는 수변 테크를 걸어가면 습지와 버드나무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그림이다. 호수 건너편에 사각으로 솟아있는 아파트의 숲도 다른 도시와 달리 경관과 조화를 이루었다. 습지 사이사이에 연꽃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이름 모를 새들과 물오리도 안식처를 찾는다. 

아무도 없는 야외 공연장 한 복판에 피아노 한대가 놓여있다. 이곳에서는 어떤 공연이 펼쳐질까? 아직 공연은 시작이 되지 않았는데 내 귓가에는 이미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그 선율에 따라 광교호수의 물고기가 튀어 오른다. 가을의 숲 속에서 들리는 아름다운 선율에 취해 나는 한동안 넋을 잃었다.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에 올라 신대저수지를 내려다 본다. 광교 신도시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곳이 아름다운 이유는 물이 있어서이다. 환경을 생각하고 주변과 조화를 이룬다면 물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여우길은 녹음이 우거진 푸르른 길이다. 녹색의 길의 들어서면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 진다. 정신분야에서도 녹색은 흥분된 사람조차도 진정시키는 색으로 알려져 있다. 녹색이 우리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이유는 녹색이 생명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녹색은 야생에서 살았던 원시시대부터 맹수로부터 숨을 수 있는 공간을 주고, 먹을 것을 주고, 뜨거운 햇빛을 막을 수 있는 그늘을 제공해 주었다.

봉녕사

여우길 인근에는 1208년 고려 희종 4년에 원각국사가 지은 수원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 사찰인 봉녕사가 있다. 비구니 교육의 중심 도량의 승가대학으로 이름이 난 이 절에는 석조삼존불, 신중탱화, 현황탱화 등의 유물, 800년 된 향나무가 보전되어 있다. 또한 이곳에서는 매년 '사찰 음식 대향연’이 열리는데 시기를 잘 맞추어 가면 사찰 음식을 직접 먹어 보거나 만들어 볼 수 있다. 경내에 들어서자 여느 사찰과는 달리 현대식 기와의 커다란 건물이 눈 앞에 서있고 그 앞 잔디밭 한 가운데는 독특한 형태의 탑이 서있다. 이곳에는 석가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 이 진신사리는 13대 달라이라마가 석가가 열반하신 이래 대대로 전수하여 모시고 있던 것을 14대 달라이라마가 인도로 망명할 때 함께 모시고 온 것이다. 그 사리를 2017년 북인도 다람살라 남걀 사원에서 이곳 봉녕사 스님 일행이 달라이라마를 참견하고 가지고 온 것이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세계 3대 성인의 한 분이신 석가모니의 유골의 일부가 이곳에 모셔져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분위기가 엄숙해 진다.

소나무다리와 나비잠자리 다리
▲ 반딧불이 다리

이 여우길에는 소나무 다리, 나비잠자리 다리, 반디불이 다리 등 다양한 이름의 다리가 길을 따라 놓여져 있다.  반디불이 다리는 수원에 많이 서식하고 있는 반디불이를 모티브로 반디불이 다리라고 이름 지었다. 반디불이 다리의 형상은 여름 밤 하늘에 떠다니는 반디불이의 여름을 상징한다.

▲ 수원 역사박물관

여우길의 마지막 구간에는 수원역사박물관이 있다. 총148평 규모의 상설 전시장에서는 1960년 전후의 영동시장 거리를 재현되고 있었다. 중앙극장, 공설목욕탕, 수원갈비를 전세계적으로 알리는데 기여한 화춘옥 등이 과거이 그대로 보인다.  한국서예박물관에는 금석문, 법서, 조선 명필, 서간, 어필, 근대명인, 사군자, 문방사우 사랑방 등의 다양한 주제로 서예들이 전시되어 있다. 

금곡동 고인돌
선정비와 정려문

이곳에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인 금곡동 고인돌과, 수원에 거주하던 사람들의 다양한 공적비와 충신, 효자, 열녀 등 모범이 되는 사람들의 공적을 알리기 위한 정려문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결국, 여우길에는 역시 여우는 없었다. 그러나 숲길을 걸으면서 이곳에 어디에 여우가 살고 있었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깊지도 않은 숲에 과연 여우가 있었을지 의문이 된다. 하지만 역사의 고장 수원에서 우리의 역사를 다시 돌아 볼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그 역사를 위해 노력하신 분들을 만났다. 그 분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오늘 여우길의 여정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