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을 갈 때마다 꼭 한 번 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반드시 예약을 해야만 갈 수 있는 곳이기에 언제나 아쉬운 발 걸음을 돌렸었다. 그 갈망이 이루어졌다. 직장 동료의 예약 덕분에. 오늘 나는 비밀스런 정원이란 이름의 비원(秘苑)으로 더 알려진 곳, 창덕궁 후원, 그곳에 간다.
창덕궁 후원은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북악산 줄기에 창덕궁과 창경궁 사이 북쪽의 정원이다. 창덕궁 후원의 조형물은 자연을 닮았다. 우리의 옛 조상들은 정원을 그렇게 만들었다. 인공으로 만들어도 인공이 아닌 듯,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게,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게 만든 창덕궁 후원은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우리 전통 정원이다.
후원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자 평지같은 완만한 언덕길이 나온다. 그 길을 지나자 정방형의 작은 연못이 보인다. 이곳이 부용지다. 너무나 아름다워 차마 눈을 뗄 수 없는 곳, 못이 네모지고 그 가운데 둥근 섬이 하나 있는 것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옛 동양사람들의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관이다.
그 앞의 안내문을 읽어보니 다음과 같이 씌여 있다.
'이곳은 후원의 첫 번째 중심지로서 휴식뿐만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담당하던 비교적 공개된 장소였다. 주합루 일원의 규장각과 서향각 등은 왕실 도서관 용도였고, 영화당에서는 때로 왕이 입회하는 과거가 치러지기도 했다. 개인적 휴식을 위한 부용정은 연못에 앞발을 담그고, 행사를 위한 영화당은 연못에 면해 있으며 학문을 연마하던 주합루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하나하나의 건물들도 특색이 있고 아름답지만 서로 어우러지면서 절묘한 경관을 이룬다.'
정말 하나하나의 건물이 모두 예술이다.
부용지 동편에 영화당이 보인다. 이곳에서 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비들이 시험을 치르고 시예를 겨루었다. 시공을 넘어서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영화당을 지나자 커다란 돌을 다듬어 만든 문, 불로문(不老門)이 보인다. 사람들은 이곳을 드나들 때마다 손으로 그 문을 잡는다. 우리는 오래 사는 것을 원치 않는다. 늙지 않고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 살기를 원한다. 늙지 않고 싶은 욕망,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불로문을 통과하자 작고 소박한 애련지 연못이 있다. 애련지 한쪽으로는 숙종 때 지어진 애련정이 보인다. 기록에는 연못 가운데 섬을 만들고 그곳에 정자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웬일인지 정자는 연못 귀퉁이에 있었다. 하지만 물 한가운데 있는 것 보다 귀퉁이에 있는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아름답다.
애련지를 지나 장락문을 통과하면 연경당이 나온다.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순조와 순원왕후의 궁중연회를 위해 정성을 들여 지은 집이다. 연경당은 일반 집과 같이 안방과 마루, 건넌방과 마루와 부속 채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 선향재는 서재 겸 응접실로 쓰이던 건물이다. 이곳에서 밤마다 창덕궁 후원 달빛 기행 행사를 한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연경당을 지나자 어려운 한자로 된 현판이 나온다. 폄우사(砭愚榭)란 이름의 정자다. ‘폄우(砭愚)’란 ‘어리석음을 고친다’라는 뜻으로 22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효명세자가 자주 머물던 곳이었다. 효명세자는 이곳에 자주 드나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왜 그토록 짧은 인생을 가야만 했을까? 효명세자는 천 년을 살듯 인생을 낭비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이곳에서 깨달았을까?
폄우사 앞쪽에는 한반도 모양의 작은 연못이 있다. 이곳이 반도지이다. 이 반도지 주변에는 존덕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그곳에는 정조 임금의 교시가 적혀 있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시내는 달을 품고 있지만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유일하니, 그 달은 곧 임금이 나이고 시내는 곧 너희 신하들이다. 따라서 시내가 달을 따르는 것이 우주의 이치이다.'
이 세상 전체는 왕 하나만을 위해 존재하고 모든 것은 왕을 따라야 한다는 왕의 최고의 존엄을 이르는 말이다. 조선은 왕 개인의 나라였지 민중의 나라가 아니었다. 갑오경장,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 동학혁명 등 백성이 중심이 되고자 열망했던 민중의 꿈은 오직 왕만의 나라를 유지하겠다는 왕족들의 사욕 때문에 무산되었다. 그리고 결국 을사오적에 의해 일본에게 통째로 나라를 바쳤다. 현대에 사는 우리는 차마 생각도 할 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는 치욕의 역사다. 그 뒤편에 보이는 궁궐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수령이 250년이 된 은행나무는 그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단풍이 수놓은 좁은 언덕길을 오르자 소요정, 태극정, 농산정, 취한정 등 아기자기한 정자와 함께 옥류천이 보인다. 옥류천이란 후원의 북쪽 깊은 골짜기에 흐르는 시내를 말한다. 1636년 거대한 바위를 다듬고 그 위에 홈을 파서 휘도는 물길을 끌어들였고 이 물길을 아래로 내려뜨려 작은 폭포가 되게 하고 이 폭포가 떨어진 곳에서 옥류천이 시작된다. 구불구불한 물길 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놀이가 이곳에서 벌어졌다.
飛流三百尺
遙落九天來
看是白虹起
飜成萬壑雷
삼백 척 날아 내리는 물줄기
멀리 하늘로부터 온다네
바라보면 흰 무지개 일더니
바뀌어 골마다 우레소리 되는구나
인조는 바위 위에 옥류천이란 세 글자를 세기고 숙종은 이곳에서 오언절구의 시를 남겼다. 그 옆에는 작은 논이 있이 있고, 현재 궁궐에 남아있는 유일한 초가집이 있다. 왕들은 이곳에서 조금이나마 민중들의 고달픈 삶을 이해하고 그 시를 지었을까?
창덕궁 후원 관람을 마치고 높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본다. 그 높은 푸른 하늘 위에도 깊은 나의 마음 속에도 아직도 아름다운 가을의 창덕궁 후원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앞으로 겨울이 오면 눈이 덮인 창덕궁 후원의 모습은 또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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