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터지고 북한군이 남하하자 국회의원들은 서울에 남아서 서울을 끝까지 사수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 경무대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곳에 없었다. 이승만은 이미 백성을 버리고 새벽에 야간도주를 한 뒤였다. 그리고 이승만은 대전에 앉아서 마치 서울에 있는 양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서울 시민 여러분, 안심하고 서울을 지키시오. 적은 패주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여러분과 함께 서울에 머물 것입니다. 국군의 총 반격으로 적은 퇴각 중입니다. 우리 국군은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할 것입니다. 이 기회에 우리 국군은 적을 압록강까지 추격하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달성하고야 말 것입니다.
거기에 한술 더 떠 서울시민들이 더 이상 피난을 갈 수 없도록 채병덕 육군참모총장은 한강 인도교의 폭파를 지시한다.
1950년 6월 28일 새벽 2시 30분! 수많은 피난민들이 인도교를 건너고 있었고 북한군이 바로 인접하여 추격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던 상황! 한 마디의 안내방송도 없이 인도교는 800여명의 피난민들과 함께 공중으로 폭파되었다.
그 결과 서울에 남아있던 국회의원들은 인민군에 잡혀 강제로 북송 되었고 남은 시민들도 공산 정권하에 강제 부역을 하거나 인민재판에 의해 총살 되었다. 그리고 서울수복 시 인민재판에 살아남은 시민들은 공산당에게 부역을 했다는 이유로 남한 정부에 의해 총살 당했다.
6.25 한국전쟁 당시 그 이승만 대통령이 머물렀던 부산의 임시수도 기념관에 간다. 부산 지하철 1호선을 타고 토성역에서 내려 2번 출구를 빠져 나와 경사진 골목을 따라 올라가자 붉은색 벽돌의 건물이 보인다. 이곳 임시수도 대통령관저는 1926년 8월 10일에 준공된 경남도지사 관사였으나 한국전쟁이 일어난 직후부터 정전이 될 때까지 대통령관저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곳에 머물면서도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보장하기 위한 활동보다 오직 자신의 정치야욕을 달성하기 위하여 총매진했다.
전쟁 발발 직전 5월 30일에 실시된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이승만을 반대하는 중도, 무소속파가 대거 당선되었다. 이는 1952년 전쟁 중에 치러야 할 간선제 대통령선거에서는 이승만이 이길 가망이 없게 된 것을 의미한다. 이를 예상한 이승만은 전쟁 중에 대통령직선제개헌 및 양원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제출하고, 자신만의 정당인 자유당을 창당한다. 그러나 이 개헌안은 부결된다. 그러자 이승만은 6.25 전쟁을 기화로 임시수도였던 이곳 부산을 중심으로 한 일원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반대하는 국회의원에게 공산당이라는 누명을 씌우고 압박해 나갔다. 이를 “부산 정치파동”이라 부른다. 그리고 1952년 7월 대통령직선제개헌안을 한 명의 반대도 없이 기립표결로 통과시키고 이승만은 1952년 8월 5일 제2대 대통령에 당선이 된다.
이러한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들은 진정으로 서로를 위해 헌신했다. 피란생활 중에 전쟁 고아들을 모아서 천막 속에서 한글과 역사를 가르쳤고, 전염병으로 고생하는 피란민들을 위해 무상으로 진료 및 치료를 해주는 의사들도 있었다. 또한 학생의 몸으로 오직 이 땅에 더 이상의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온 몸을 바친 무명용사들도 있었다.
국가란 과연 무엇이었던가? 국가는 기득권이 가진 권위와 자산을 지키기 위해 이상한 논리의 이념과 패러다임으로 서로간의 장막을 치고 가족과 형제를 생이별 시키고, 서로를 증오하게 만드는 것이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살아가는데 여념이 없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국가간의 이동을 막고 서로 총을 겨누고 으르렁대는 이데오르기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각 국가를 권력의 정점에 있는 위정자들만이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데오르기를 이용하고 국가라는 이름을 이용한다. 그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적을 제거하고 파벌과 경계를 만들고 위기를 조장하고, 전쟁을 통해 그 권력을 더더욱 공고히 한다. 백성의 생명을 담보로 한 잔인한 게임!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그 위험한 놀이가 지속되고 있다.
그 암울한 역사의 현장에 그 시절 피란민의 행렬이 보인다. 지금도.
위치: 부산시 서구 임시수도기념로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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