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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서울로 7017 – 자연에의 회기

인간의 몸은 나약하기 그지없다. 인간은 작은 물방울 하나에도 쓰러질 수 있고, 자신의 키 높이에서도 떨어져 죽을 수 있다. 털 하나 없는 여린 피부는 그대로 노출되어 작은 긁힘에도 상처를 입고, 약한 광선에도 염증을 일으킨다. 생명체 중에 가장 나약한 동물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지구를 지배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며 상부상조할 줄 알고 이성적으로 사고 할 줄 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부른다.

홀로 살 수 없는 동물이기에 인간은 집단을 만든다. 서로가 힘을 합쳐 집을 짓고, 식량을 만들고, 물물교환을 한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들어 도시가 만들어진다. 집에서 몇 걸음 나서면 모든 것을 만난다. 식당, 병원, 카페, 놀이터, 없는 게 없다. 그야말로 삶의 천국이다.

 

그러나 자동차가 발명되면서부터 도시는 변했다. 시장과 병원, 카페, 놀이터 모든 것이 차를 타고 가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거리에 있게 됐다. 새들과 나무가 자라던 공원과 보행로는 모두 자동차가 다니는 차도로 바뀌었다. 지상의 도로도 모자라 공중에 차도를 만들었다. 이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공기대신에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을 마시고 산다.

 

서울역고가도로도 그 중 하나였다. 서울역고가도로는 오직 경제발전만을 위해 총 길이 1150m로 1970년 8월15일 개통했다. 남대문시장과 청파·만리동 봉제공장 등 상인들이 물건을 싣고 나르는 역할을 했고 철거가 결정된 날까지도 하루 4만6000대의 차량이 서울역 고가를 지나갔다. 육중한 트럭들의 소음이 난무했고 사람들은 고가에 막혀 맨 하늘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4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면서 시설은 노후화되었고 언제 붕괴될 지 모르는 안전사고 위험이 높은 재난위험등급 D등급의 진단을 받았다.

정부와 서울시는 미관상 좋지 않던 서울역 고가를 아예 철거하고 대체 도로를 만들 것인지 수리할 것인지 끝없는 논쟁이 시작됐다. 명확한 방침을 내지 못한 채 고민하던 중 새로 부임한 박원순 시장은 서울역 고가의 공원화 방침을 전격 발표했다.

처음엔 남대문시장 상인들과 회현동 주민들은 공원화 사업은 주민들의 생존권을 외면하는 처사라고 강력 반발했다. 그러나 시장의 끊임없는 설득으로 시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줄어들자 이번엔 심의권을 쥔 국토교통부, 문화재청, 경찰이 잇따라 제동을 걸었다. 경찰은 교통대책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문화재청은 문화재인 옛 서울역사를 가린다는 이유로, 국토교통부는 국토부의 허가를 받아야 안건을 심의하겠다는 입장으로 팽팽히 맞섰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서울역고가도로’는 ‘서울로 7017’로 재탄생했다. ‘서울로 7017’의 7017은 1970년 만들어진 서울역 고가가 2017년 17개의 사람이 다니는 길로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다. 이제 시민들은 차도로 가로막혀 우회했어야 할 길을 이 길을 통해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 명동성당, 서울광장, 남산도서관 등 가고 싶은 어느 곳으로도 몇 분만에 걸어서 갈 수 있다.

상인들이 우려했던 남대문 상권의 추락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관광객의 증가로 남대문은 더욱 더 활기를 찾았다. 사람들은 서울로7017을 걸으면서 잃어버렸던 자신만의 여유도 생겼다.

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아름다운 갈대 숲을 지나~

윤수일의 ‘아파트’의 노래가사다. ‘아파트’ 노래는 예전의 서울 도심의 풍경을 노래한 것이다. 그 때 서울엔 갈대 숲이 있었다. 별 빛이 흘렀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 사라진 풍경, 서울 도심 한 복판에 꽃 길이 생겼다. 잃어버린 옛길을 되찾았다. 도로 위에 수국이 만발하고, 초록의 나무가 자라고, 다시 갈대가 자란다. 눈을 들어 양 옆을 바라봐도 차들은 보이지 않는다. 불과 30년전에는 서울의 자연스러운 풍경을 지금의 사람들은 낯설어 한다.

경의선숲길, 청계천, 서울로7017, 이렇게 하나, 둘 자연이 서울 도심에 들어선다면 다시 서울 하늘에 별빛이 흐를 것이다. 보행자가 늘어나면서 주변에 카페와 음식점도 활기를 찾을 것이다. 언젠가 서울은 매연 없는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살기 좋은 명품도시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