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가 쓴 ‘길 없는 길’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의 근원을 찾아 아홉 살 나이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청계사로 갔던 경허의 행적으로 추적한다,
일자무식의 경허, 그에게 천리를 달리는 명마로 만들기 위해 박처사는 글을 가르친다. 그러나 박처사는 그에게 글을 가르침으로 인해 그는 큰 지혜대신 작은 지식을 얻고, 그 지식은 그의 올가미가 되어 그를 억압한다. 그런 작은 세계에만 머무를 뻔 한 경허는 스승 만화를 만나 강원의 스승자리를 물려 받는다. 그리고 역병에 걸려 생사를 넘나드는 인간들을 보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다.
- 최인호의 길 없는 길의 줄거리
경허는 1846년부터 1912까지 살았던 조선 말기의 승려다. 그는 태어난 해에 부친을 여의고 9살에 경기도 의왕에 있는 청계사로 출가했다. 일자무식이었던 그는 17세에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사서삼경과 불교경론, 제자백가를 섭렵했고 33세때 깨달음을 얻어 서산대사 이후 맥이 끊겼던 선종의 계보를 이은 실존인물이다.
길을 간다. 안양 평촌에서 청계사까지 경허 선사가 출가했던 그 길을 찾아서 간다. 정해진 길이 아닌 길 없는 길을 따라서 간다. 모두 같은 하늘, 같은 나무, 같은 산, 같은 건물, 같은 길, 같지만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보면 길을 찾는 실마리가 되는 우연을 만나고 또 그 우연 속에 또 다른 길 없는 길을 간다.
빌딩숲을 지나고 육교를 건너 학의천을 따라서 따라서 간다. 빌딩이 있고 육교가 놓여진 이곳은 한 때 딸기가 자라고 채소가 자라던 허허벌판이었다. 그곳에 이제 빌딩이 있고 육교가 있다. 세월이 지나면 이곳엔 또 무엇이 있을까? 지금 보이는 모든 것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허상이다.
학의천에 흐르는 물도 잠시 전에 흐르는 물이 아니고, 길가에 피어난 꽃도 어제의 그 꽃이 아니다. 영원하리라 생각하는 모든 것은 피고 지면 그뿐, 한 순간의 허상이다.
길 위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몰려오고 떠나간다. 저 사람들도 한때는 아무것도 없는 공이었다. 어느 한 순간 이세상에 들어와 자기 나름대로의 이름과 자기 나름대로의 직업과 생을 살다가 한 줌의 뼛가루가 되어 하나의 이름만 남긴 체 세상을 떠나간다. 세월이 지나면 그 이름과 뼛가루마저 형체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저 길가에 핀 코스모스처럼.
모든 생명은 죽음을 향해 간다. 죽음은 우리가 먹는 음식, 우리가 누리는 쾌락, 우리가 보내는 시간 속 어디에도 독처럼 녹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죽음이 자기와 상관없는 남의 일인 것처럼 잊어버리고 있을 뿐이다.
- 최인호의 길 없는 길
작은 침방울에도 코로나에 걸려 죽음에 이르는 오늘의 현실에 이 글이 마음에 더 와 닿는다. 모두가 부질없는 삶인데도 우리는 사랑하고, 만나지 못하는 것에 아쉬워하고, 슬퍼하고 미워하고, 기뻐하고, 작은 것에 대해 분노한다.
학의천을 따라 인덕원을 지난다. 인덕원은 성남, 과천, 안양의 분기점으로 교통의 요지다. 조선중기까지 원이 설치되어 여행자의 숙소로 이용되었으며 원이 폐지된 조선후기부터는 자연적으로 술집들이 생겨나 주막거리가 되었다. 인덕원이란 지명은 조선시대 환관들이 이곳에 내려와 덕을 베풀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대를 이을 생명을 가지지 못한 환관들은 이미 인생의 덧없음을 깨달은 경허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저 산밑의 한 조각 묵은 밭을
왜 즐기냐고 노인께 물었더니
몇 번 팔았다가도 다시 산 것은
대 숲과 소나무의 맑은 바람 때문이라네.
맑은 숲공원을 지나자 우담바라핀 청계사라는 팻말이 보인다. 우담바라는 삼천년에 한 번 핀다는 전설의 꽃이다. 그 꽃이 2000년 10월 이곳 청계사의 불상에 피었다. 매스컴과 다양한 매체에서 취재에 나섰다. 학계에서는 꽃이 아니라 일종의 곰팡이이거나 벌레의 알이라고 주장하지만 많은 불자들은 실제 우담바라가 핀 것이라고 믿고 있다.
까마득히 높은 계단을 오르면 천년고찰 청계사의 극락보전이 보인다. 청계사는 신라말에 창건되어 고려 충렬왕 때 중건된 사찰이다. 근대에 이르러 조사의 혜맥을 전승한 근대 선종의 중흥조인 경허 선사가 출가한 곳으로 유명하다.
극락보전 오른쪽에는 15m 길이의 2m 높이의 거대한 와불상이 있다. 이 불상은 청계사 주지였던 지명이 1999년에 완성시킨 것으로 주먹 크기의 차돌들을 붙여 만들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와불 앞 자갈이 깔린 광장에 불자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그 와불상 앞에는 국보로 지정된 동종이 있다. 이 동종은 승려 사인이 1701년에 제작한 것이다. 종의 꼭대기에는 두 마리의 용의 머리가 연결되어 종을 매다는 고리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국 범종의 전통양식에서 쌍용으로 된 것은 드물어 국보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전쟁물자 수탈정책으로 이 종도 없어질 위기에 처했으나 청계사 승려들이 서울 봉은사에 잠시 감춰두어 위기를 면했고 1975년 청계사에 돌아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삶에 고뇌한다. 그러면서도 죽음은 두려워한다. 살기 위하여 바둥거리다 보면 이세상의 모든 것이 고행이며 괴로움이다. 그 괴로움을 잊고자 사람들은 피난처를 찾는다. 그 피난처가 종교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답은 없다. 답은 오직 마음에 있다. 그 마음을 놓아버리지 않으면 그 마음에 구속되어 세상은 더욱 더 힘들어진다.
"제 마음이 편치 못하니 스님께서 편안케 해주소서."
"그 마음을 가져오너라. 그리하면 내가 편안케 해 주리라."
"마음을 아무리 찾아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
"내가 이미 네 마음을 편안케 하였다."
보는 것은 둘이 아니다. 어제 본 것이 둘이 아니라면 보는 것으로 본 것을 보지 않는다. 만일 보는 것을 다시 본다면 앞에 보는 것이 보는 것이냐, 뒤에 보는 것이 보는 것이겠느냐. 마치 볼 것을 볼 때의 보는 것이 아니며 보는 것이 오히려 보는 것을 떠나 보는 것이 미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 백장
대장부라면 바로 오늘이야말로 진실된 현재임을 알아야 할 것이며 하루하루를 철저히 살아가야 할 것이다. 있는 것은 바로 현재, 지금일 뿐 달리 영원도 순간도 없는 것이다. 산승이 설하는 것은 그때 그때의 병을 고치기 위한 일시적인 처방일 뿐 진실한 법은 없는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이 깨닫는다면 이것이 참된 출가이며 하루에 만 냥의 황금도 쓸 수가 있는 것이다. - 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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