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간: 3.4Km
노량진역 - 노량진수산시장 - 현대자동차서비스센터 - 노량진근린공원 - 견우와직녀교 - 용마산정상 - 신대방삼거리역 - 소요시간: 약 1시간
동작충효길 4코스는 노량진길이다. 노량진 길은 노량진역에서 출발해 노량진수산시장, 노량진근린공원, 용마산을 지나 신대방삼거리역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출발점인 노량진역이다. 현재 지하철역인 노량진역은 우리나라 최초 철도인 경인선이 시작된 곳이다. 경인선은 서울 노량진에서 인천 제물포까지 총 33.2km 구간의 철도로, 1899년 개통 당시 증기기관차와 함께 파격적인 교통의 혁명이었다.
무궁화길이다. 무궁화는 우리나라 국화다. 각 나라들은 국화가 있다. 각 나라들은 최근에 들어와 스스로 자신의 나라의 국화를 정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부족국가 시대부터 무궁화가 우리나라 꽃이었다. 무궁화는 우리 스스로 국화로 지정한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들이 먼저 우리나라를 무궁화 근자를 쓴 근화국(槿花國)이라고 불렀다. 무궁화는 사시사철 핀다. 수많은 진드기가 붙고 아무리 공격을 해도 지었다가 다시 피고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몇 십 년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수많은 중국의 왕조는 700년이나 버틴 고구려를 보고 부러워 그렇게 불렀다.
현충원길처럼 여기에도 건곤감리 태극문형의 게이트가 있다.
태극기의 문형 빨강과 파랑은 양과 음을 상징하고 흰 바탕은 순수를 상징한다, 4각의 모서리의 건곤감리는 각각 하늘, 땅, 물, 불을 가리킨다. 고종의 명을 받아 만든 태극기는 끈임 없이 변화하고 생동하는 우주만물의 원리가 담겨져 있다.
이곳에는 애국지사 유일한이 세운 유한양행이 있다. 유한양행의 설립자 유일한은 1904년 9살 때 선교사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 건너가 고학으로 공부를 하던 시절, 일제가 조선을 침탈하려 하자 그는 스스로 한인소년병학교에 입교하여 3년동안 학과공부와 군사훈련에 임하였다.
이후 1915년 헤스팅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디트로이트 변전소에 취업하여 학비를 마련한 다음 미시건 주립대학 상과에 입학하여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다녔다. 국내의 3.1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대학 4학년이었던 선생은 대의원 자격으로 서재필, 이승만, 조병옥, 임병직등과 함께 한인자유대회에 참가하여 실무적인 일을 맡았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자 미국에서 숙주나물 통조림을 생산하는 식품회사를 설립하여 사업자금을 마련했다. 그리고 사업체와 재산을 정리하고 귀국하여 1926년 12월 유한양행을 설립, 경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30년대 일제가 만주침략과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국내외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그는 다시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41년 4월 해외 독립운동단체들이 연합하여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개최한 해외한족대회 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1941년 일제의 진주만 폭격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미군 전략정보처(OSS)의 한국 담당 고문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특히 소년병학교 출신으로 대일 무장투쟁과 독립군 양성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던 그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가 한인 국방 경위대로서 창설된 맹호군 편성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였고, 같은 해 8월 29일 LA시청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현기식에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위원장 김호와 함께 참석하여 중경임시정부의 축사를 낭독하기도 하였다. 이는 비록 주정부에서나마 재미 한인동포들이 일본 국민이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민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감격의 순간이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결실이 있기까지는 선생의 보이지 않는 활동이 밑받침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1993년에 개원한 노량진근린공원은 동작구 대방동에서 노량진동 송학대공원, 고구동산까지 넓게 어우르고 있다. 이곳에는 조깅트랙, 테니스장, 다목적 운동장, 충혼탑, 수경시설 등이 있다, 요즘은 둘레길을 갈 때마다 이러한 체육시설을 곳곳에 볼 수 있다.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지막한 용마산을 오르다 보면 산을 오른다는 느낌보다 그저 평지를 걷는 듯 하다. 중간중간마다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때로는 숲속문고도 있다.
이곳에는 1956년부터 1989년까지 33년간 공군본부가 있었다. 1989년 7월 이 본부가 계룡대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이곳에 공군을 복무하다 순진한 사람들을 위한 충혼탑을 만들었다.
이 보도육교의 이름은 견우와 직녀 보도육교다. 어떤 이유로 이 육교에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인가? 이쪽과 저쪽으로 어렵게 건너서 만날 수 있지도 않은데.
한여름의 생태습지공원에는 물이 없다, 예전에는 이곳에 물이 아주 풍부하여 깊은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습지에 수생식물을 보러 나온 아이보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할머니, 어머니의 실망이 더 크다.
용마가 승천했다고 붙여진 이름의 용마산이다. 정상도 없고 도로에서 산까지 불과 몇 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산이다. 경관이 탁 트이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볼거리도 없는 산이지만 이곳에 이런 쉼터가 있다는 것은 주민들에게는 참 다행이다.
산의 대부분이 군부대로 둘러싸여 있는 용마산이지만 거부감이 없애 담장에 친근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산 정상 근처까지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런 곳에 사는 아이들은 어떤 어린 시절 추억을 간직할까? 학원과 스마트폰 게임밖에 보이지 않는 상망한 도시의 아이들이 애처롭게 보인다.
드디어 동작충효길 4코스 노량진길의 종착점인 지하철 7호선 신대방역에 도착했다. 짧은 코스였지만 약간의 운동은 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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