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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누리길

동작충효길 3코스 지극한 효심이 함께하는 한강나들길

  • 구간: 4.7Km
    동작역 - 한강수변길 - 흑석역 - 효사정 - 용양봉저정 - 노들역 - 배수지공원 - 사육신역사공원 - 노량진역
  • 소요시간: 약 1시간 20분

동작충효길 3코스 한강나들길은 지극한 효심이 함께하는 공간이다. 한강나들길은 동작역부터 노량진역을 잇는 구간으로 유구히 흐르는 한강을 감상하며 산책할 수 있는 구간이다.  효사정에서 우리와 역사를 같이한 한강의 전경을 바라보고 용양봉정저정에 들러 정조의 효심을 생각하고, 세조의 왕위 찬탈을 죽음으로 막고자 했던 사육신이 잠들어 있는 사육신역사공원에서 진정한 충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길이다.

한강나들길은 현충원길의 종착지인 동작역에서 시작한다.

휴일의 이른 아침의 한강변에는 운동하는 사람들과 산책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나는 40대 초반에 심한 척추관절염으로 계단도 내려오지 못할 정도로 심한 고통을 느꼈었다. 병원의 의사들도 무리한 운동을 하지 말고 걸어도 1km이상 걷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그러나 갑자기 구조조정을 당하면서 어쩔 수 없이 개인사업을 하게 되었고 영업을 하느라 많이 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아픈 통증이 사라졌다. 계단도 내려올 수 있고 작은 산도 오를 수도 있다.  만일 내가 의사의 말대로 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이 길을 걸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운동은 백약보다 나은 것이다.

서울의 젖줄, 한반도의 젖줄인 한강이 유유히 흐른다. 금강산과 강릉의 오대산에서 시작한 한강은 우리나라의 중심부를 정확히 관통한다.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가려면 이 강을 통과할 수밖에 없다.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부터 조선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 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인간의 정복 야욕에 의해 무참이 죽어갔을까?

한강이란 이름은 본래 한가람에서 유래되었다. 한은 크다는 말이고 가람은 강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한'이라는 말은 크다는 말 외에도 가슴의 응어리 '한'이라는 말도 내포되어 있다.

한강변을 달리는 수많은 자전거들의 행렬

한강 수변길을 지나 해병대 헌병 전국 연합회 건물 앞을 통과하여 도심으로 들어간다.

흑석초등학교

한 나라의 수도를 관통하는 멋진 강을 가진 나라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 강을 가진 대부분의 나라들은 그 강을 배경으로 멋진 작품들과 스카이라인을 만들어 세계의 관광객을 몰려들게 하고 있다..

그러나 한강 주변에는 볼품없는 사각의 아파트와 고속도로의 차들만이 보인다. 권력과 황금에 눈이 먼 몇몇 사람들이 난 개발로 아름다운 국토를 하나 둘 망가뜨리고 있다.

이곳 동작구는 서울 남서쪽에 있으면서 한강을 끼고 있어 땅이 비옥해서 선사시대부터 영토분쟁이 심했다. 처음에는 백제 영토이었다가 광개토왕과 장수왕에 의해 고구려 영토가 되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신라의 땅이 된다. 조선시대가 되면서 동재기 나루, 노들나루라는 이름으로 항상 우마차와 수레로 북적이었다. '동작'이라는 명칭도 동재기라는 옛말을 한자로 쓴 것이다.

효사정

효사정은 노량진 한강 남쪽에 있는 정자로 문인 노한의 별장이다. 노한은 조선 태종의 동서지간이면서 세종 때 우의정을 지낸 인물이다. 노한은 모친이 죽자 이곳에 정자를 짓고 3년상을 치렀고 아 곳에서 멀리 북쪽을 바라보면서 개성에 묘를 쓴 아버지를 추모했다고 한다. 충과 효를 강조하는 성리학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았던 조선은 부모가 죽으면 양반들은 반드시 3년상을 치렀다. 조선의 문종도 아버지 세종과 어머니가 잇달아 죽자 2번의 삼년상을 잇달아 치른 후 몸이 상해 일찍 단명하기도 했다. 당시 상황을 미루어볼 때 노한처럼 이렇게 전망이 좋은 곳에서 시묘살이를 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이다,

심훈 동상

심훈은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서 태어나 인생의 대부분을 이곳 흑석동에서 살았다. 1915년 심훈은 서울 교동보통학교를 졸업 후 경성 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고 학교에서 일본 수학선생의 민족차별에 대한 항거로 시험 때 백지를 내어 과목 낙제로 유급되기도 하였다. 4학년 때에는 3.1운동에 참가하여 투옥되었다.  출옥 후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우당 이회영과 만나 농민소설을 집필하는데 사상적 토양을 만들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고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둘쳐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1930. 3. 1

학도의용병현충비 

동서로 나뉘어진 세계의 이념갈등의 대리전쟁, 민족의 비극이었던 6.25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30만명의 어린 학생들이 외 싸워야 하는지 명분도 알지 못한 체 오직 조국과 민족을 구한다는 일념으로 전투에 참가했다.

훈련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던 그들은 전후방 모든 전투에 배치되어 싸우다 꽃다운 청춘을 마감했다.

만일 영혼이 있다면 또 다른 세계에서는 평화롭고 행복하게 잘 사시기를.

용양봉저정

용양봉저정은 1791년, 정조 15년에 지어진 행궁이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인 현릉원 참배길에 한강을 건너서 잠시 휴식을 하던 곳이다, 정신병에 걸려 수많은 죄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 퇴주에 갇혀 죽음을 당한 사도세자를 수원 화산으로 옮기고 자주 참배를 하러 행차를 했다.

용양봉저정이란 이름은 정조가 이곳 주위를 살펴보고 "북쪽의 우뚝한 산과 흘러 드는 한 강의 모습이 마치 용이 굼틀굼틀하고 봉이 나는 것 같아 억만년 가는 국가의 기반을 의미하는 듯하다"라며 지은 것이다.

노들나루 공원 

이곳은 조선 제 6대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목숨을 바친 사육신을 모신 곳이다, 단종 3년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은 왕위를 찬탈하고 왕위에 오른다, 이에 의분을 품은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김문기 등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참혹한 최후를 마치니 이들을 훗날 사육신이라 부르고 있다.

사육신 위패

권력이란 무엇이길래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삼촌이 조카를 죽이며, 온갖 비난과 지탄을 받아가면서까지 쟁취하려는 것일까?


결국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얻은 세조는 날마다 악몽에 시달려 하다 생을 마감하게 된다.

천천히 이것저것 생각에 잠겨 걷다 보니 동작충효길 3코스 한강나들길의 종착지인 노량진역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