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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청와대 관람 - 구석구석 둘러본 소감


그 동안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았던 청와대 내부를 관람하러 간다. 청와대 관람 신청은 청와대관람신청 홈페이지에서 선착순으로 신청이 가능하다.

 

청와대 본관

청와대는 고려시대 남경의 별궁이 있던 곳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경복궁의 후원으로 삼아 무예를 훈련하거나 과거시험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조선이 패망하면서 일제는 이곳을 철거하고 총독의 관저를 지었다. 청와대 본관은 이때 지어진 것이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경무대라고 이름을 바꾸고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었다. 지금의 청와대란 이름은 1960년 윤보선 대통령이 지은 것이다.

 


필자는 서슬이 퍼런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에 청와대를 가본 적이 있다. 당시 직장에 다니면서 대학을 다녔던 필자는 회사의 심부름으로 물건을 전달하기 위해 청와대를 갔다. 청와대를 가기 위에 효자동 근처 슈퍼에서 청와대 가는 길을 물어보았다. 슈퍼 주인은 책가방을 들고 있는 대학생인 필자를 보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사복 경찰을 데리고 왔다. 필자는 사복경찰에 이끌려 효자동 파출소에서 청와대 근무자와 전화 통화를 하고 겨우 청와대를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던 곳이 이렇게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었다.

 


대통령 집무실을 비롯하여 회의실·접견실·주거실 등이 있는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2층짜리 청와대본관을 관람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거의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덧신을 갈아 신고 청와대 본관 내부로 들어간다.

 


본관에 들어서자 드라마에서만 보아왔던 붉은 양탄자가 깔린 높다란 계단 위에 커다란 한반도 지도가 걸려있다. 지도에 만주로부터 뻗어 내린 백두대간의 대동맥이 살아 움직이듯 선명하다.

 


이곳 충무실은 불과 두어 달 전만 해도 대규모 인원의 임명장을 수여하거나 회의를 하는 공간이었다. 외빈이 왔을 때 만찬과 공연을 하는 등 다용도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이제는 모두가 역사의 공간으로 남게 되었다.

 


인왕산의 이름을 딴 인왕실은 서양식으로 꾸며졌다. 간담회나 오찬, 만찬이 열리는 소규모 연회장, 외국 정상 방한 때 공동 기자회견장으로 활용한 공간이다.  파란색 바탕의 그림이 멋지게 어울린다.

 

대통령집무실

본관의 핵심 공간으로 대통령이 업무를 하는 곳이다. 국정현안에 대해 집무를 보거나 소규모 회의를 주재했던 장소다. TV 뉴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곳에 앉아 서류에 서명하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접견실

대통령과 외빈이 만나는 장소로 사용된 곳이다. 동쪽 벽면은 황금색 '십장생문양도'로 장식하였으며 창문은 나무창틀과 문살 위에 한지를 마감하여 한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곳에서 각국의 정상들이 회담을 마치고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무궁화실(영부인 집무실)

무궁화실은 대통령의 부인이 사용하던 공간이다. 외빈이나 접견실, 집무실로 쓰였다, 대통령의 부인도 대통령의 국정을 보좌하기 위해 이곳에 근무했었다.

 


역대 영부인들의 초상화가 벽면에 걸려있다. 대통령이 되면 대통령뿐만 아니라 영부인의 외교적인 역할도 중요하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는 역대 모든 영부인의 모범이 된다. 대통령의 귀가 아부하는 청와대 측근에게 닫혀 있을 때 재야 여론을 수렴하여 대통령에게 건의하기도 하고 정신박약자나 나환자 들을 찾아 다니며 따뜻한 손길을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주로 정치적인 활동만 일삼는 후대의 영부인들이 본받을 만하다.

 

불로문

청와대 관람을 마치고 대정원을 지나가면 불로문이 나온다. 나이가 많은 대통령에게 오래 살라는 의미로 불로문을 만들어 준 것 같다. 불로장생을 원하는 많은 관람객들이 이 문을 드나들고 있다.

 

미남불

국보 미남불이 있는 곳으로 간다. 경주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시대인 9세기에 경주 남산의 사찰에서 조성되었다. 이 불상이 정확히 어느 사찰에서 조성되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일부 학계에서는 삼국유사에 기록이 있는 유덕사란 절로 추정한다. 자비로운 얼굴, 당당하고 균형잡힌 신체, 풍부한 양감에서 통일신라 전성기 양식을 엿볼 수 있어 '미남불'로 불렀다.

이 불상은 원래 경주에 있었는데 일제에 의해 1913년경 서울 남산의 왜성대 총독관저에 놓였다가 1927년에 조선총독부 관저를 새로 지으면서 특별한 한국의 국보를 관저에 함께 세워놓자는 의견에 따라 이 불상을 낙점하여 총독관저로 옮겼다. 경주에서는 최근에 이러한 이유로 미남불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자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오문정

오운정은 조선시대 왕이 후원을 거닐거나 군대를 사열하고 농사를 권장하는 행사 때 이용한 정자다.

오운정은 1865년 경복궁 중건 당시에 건립되었는데, 이미 조선 초기에 노루와 사슴을 경복궁 후원에서 길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터전은 조선초기부터 운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27년 일제는 조선총독 관저를 지으면서 이곳에 있던 융문당·융무당·경농재 등의 건물을 헐어버리고 오운각만 남겼다. 현판의 오운정 현판 글씨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이다. 

 


청와대 관저로 내려오는 길에 연못에 수많은 동전들이 던져져 물에 잠겨있다. 복을 기원하는 소박한 관람자들의 염원일까? 아니면 관람이전 청와대에 있던 누군가가 이곳에 동전을 던져 놓았을까?

 

청와대 관저

길은 청와대 관저로 이어진다. 예스러운 한옥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이곳은 역대 대통령과 가족들의 거주공간으로 활공간인 본체와 접견 행사공간인 별체, 우리나라 전통양식의 뜰과 사랑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관저를 바치고 있는 오래된 기둥과 옛날 시골 여느 집과 다름없는 관저 내부의 옷장과 뒤꼍이 고풍스럽다.

 

침류각

1900년대 초의 전통가옥으로 경복궁 후원에서 연회를 베풀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북궐의 누각건물로 추정된다.

 

녹지원

'청와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안내도에 나와있다. 수령 310년, 높이 16미터의 아름드리 반송이 있어 녹지원이라 부른다. 이곳에서 해마다 어린이날 행사, 어버이날, 장애인의 날 행사가 열렸다. 연출된 듯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과 어린이들의 환한 웃음이 이곳에 보이는 듯 하다.

 

춘추관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기자들의 기사 송고실로 사용되던 공간이다. 명칭은 역사기록을 맡아보던 관아인 예문춘추관에서 따왔다고 한다. 필자가 업무상 여러 번 방문했던 곳인데 다시 관람하면서 보니 왠지 감화가 새롭다.

 

춘추관앞 헬기장

청와대에서 헬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춘추관 앞에 있는 헬기장이다. 현재는 연인과 가족들이 단란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비꼈다.

 


인류 역사는 권력을 향한 욕망의 역사다.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국가와 국가 간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욕망이 모여 하나의 역사를 만든다. 국가의 권력의 중심에는 왕이 있었다. 왕은 자신이 생존하는 동안 국가의 모든 권력을 독차지 했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현대에 와서도 결국 권력의 중심은 대통령에게 있다. 정치에 입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권력의 종점인 대통령의 권위에 도전한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가에 오직 한 사람만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정치가는 대통령에 대한 권위 대신 최고 권력자가 자신에게 의존하게 함으로써 최고 권력자 위에 군림하기도 한다. 권력에의 의지를 쓴 니체는 하인이 없으면 귀족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하인은 주인이 자신에게 의존한다는 사실 자체를 무기로 삼고, 주인이 자신에게 더욱 의존하게 만들면 만들수록 주인에 대한 하인의 권력은 커진다. 이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야인으로 있을 때는 능력이 있고 모두에게 추앙을 받던 대다수의 정치가는 이곳 청와대에 들어가면 무능하게 된다.  하인에 의해 자신이 조정 받지 않으려면 웬만큼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구중궁궐 같이 외부와 차단되어 있는 청와대는 더욱 그러하다.

이제 대통령의 집무실의 위치가 비꼈다. 바뀐 장소도 역시 철통 같은 수비대로 둘러싸여 언로가 차단되어 있다. 그러나 국민과의 소통은 권력자의 의지다. 국민은 오직 권력자가 국민과의 소통을 잘하고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달라는 것뿐이다. 앞으로의 권력자는 항상 닫혀있던 귀가 국민을 향해 언제나 열려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