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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

관악산둘레길 관악구 구간(서울구간) 호압사에서 사당역

관악산은 개성의 송악산, 파주의 감악산, 포천의 운악산, 가평의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에 속한 산으로,  서울의 남쪽 경계를 이루고 있다. 관악산은 북한산, 남한산, 계양산 등과 함께 서울분지를 이중으로 둘러싼 자연의 방벽으로 서울의 요새를 이룬다. 행정구역으로는 서울시 관악구와 금천구, 경기도 과천시와 안양시에 걸쳐있다. 1968년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73년 관악구가 영등포구에서 분구되면서 산이름이  구의 이름이 되었다. [두산백과]

이번에는 관악산둘레길의 과천, 안양, 금천구 구간에 이어 마지막으로 관악구 구간을 소개한다. 이 구간은  호압사에서 출발하여 서울대, 낙성대공원, 전망대, 무당골, 관음사를 지나 사당역까지 가는 구간이다.

호압사

관악산둘레길 관악구구간은 호압사에서 출발한다. 한 사람이 산을 오르고 있다. 자세히 보니 맨발이다. 저렇게 맨발로 걸으면 땅속의 기운을 흡수하여 면역력도 강화시키고, 온 발의 감각을 활성화 시켜 인지력이  좋아지고, 지압효과가 있어 뇌를 활성화 시킨다고 한다. 언제 나도 한번 맨발로 산을 올라봐야겠다.

여기서부터 관악산둘레길 제2구간으로 표시되어 있다. 경기도(과천시, 안양시)와 서울(금천구와 관악구)에는 관악산둘레길의 구간명칭이 다르게 부르는 듯하다. 지자체끼리 합의해서 명칭을 통일했으면 좋을 듯싶다.

삼성산 성지

이곳 삼성산 성지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효수형을 받고 순교한 성 라우렌시오 앵베르 범 주교와  성 베드로 모방나 신부, 성 야고보 샤스탕 정 신부의유해가 안장된 곳이다. 이들은 1836년 조선에 입국하여  전국을 돌며 천주교 복음을 전파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하나의 종교가 50% 이상을 점유하고 나머지 종교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느것 하나도 과반을 점유한 종교는 없다. 전 세계에 천주교, 기독교, 불교, 도교 및 각종 토템신앙 등 모든  종교가 어우러져 함께 공존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이 구간은 함께 걷는 이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편안하고 아늑한 길이다. 이 길은 서울시 테마산책길로 지정되어 '관악산 도란도란 걷는 길'로 명칭이 되어있다.

바위위에 올라서니 서울대가 한 눈에 보인다. 

길 주변으로 장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것을 보니 관악산 입구가 멀지 않은 듯하다. 장승은 지역의 경계와 이정표를 표시하며 마을의 수호신이기도 하다. 예전에 마을 어귀에는 어김없이 장승 또는 성황당이 있어 밖에서 들어오는 재앙을 막고 마을의 안팎을 구분해주는 역할을 했다.

서울대에서 올라가는 관악산입구에 내려와 서울대 쪽으로 향한다.


서울대입구에서 고교생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사진을 찍고 있다. 우리나라는 기회의 평등이라는 이름 하에  전세계 유래가 없을 정도로 복잡한 입시제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제도는 다양한 입시 비리를 창출했고,  돈 있고 권력이 있는 자만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입시제도는 단순해야 한다. 편법을  만들 수 생길 수 없게. 

서울대 우측의 큰 도로 옆으로 서울둘레길 팻말과 함께 관악산둘레길 표시가 보인다. 다시 그 길을 따라간다.

아무도 없는 조용하고 평탄한 숲길을 걸으면서 잠시 생각을 멈추고 온 자연을 온 몸으로 느껴 본다.

내 몸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세상과 내가 하나가 된다.

살아서도 수 천년,
죽어서도 수천 년
변하지 않는 나무들.

인간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하지만 그 말은 틀린 것 같다. 나무는 온 몸이 잘려 나가도 그루터기가 되고 받침 목이 되어 세상에 도움이 되는데.

그 나무들이 온 산을 둘러싸고 도로의 가로수가 되어 산소를 뿜어주고 그늘을 만들어 준다. 우리는 그 나무가 없으면 한 순간도 살 수가 없다.

낙성대

낙성대는 고려시대 명장 인헌공 감감찬이 태어난 장소이다.  장군이 태어날 때 이곳에 별이 떨어졌다 하여 이곳을 낙성대라 불렀다. 장군은 거란의 침입을 막아낸 것을 비롯하여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나라를 구한 3대 영웅 중 강참찬, 을지문덕은 문신이다. 이순신 장군도 문신에 뜻을 두었으나 역적의 집안이라 문과를 치를 수 없어 할 수 없이 늦은 나이에 무과를 치른 것이다. 전쟁은 예나 지금이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술과 전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안국사

이곳에 고려명장 강감찬을 기리는 안국사라는 사당이 있다. 안국문이라고 쓰여져 잇는 외삼문을 지나 계단을 올라선다. 배흘림 기둥 사이에 하늘색 문은 마치 혼백이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 열린 문  사이에 향이 피워져 있고 그 어두운 안쪽에 금방 문을 열고 나올 것 같은 강감찬 장군의 영정이 있다.

낙성대 삼층석탑

그 영정 앞에 잠시 머리를 숙이고 사당 계단을 내려오면 사당 우측에 삼층석탑이 보인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된 낙성대 삼층석탑은 백성들이 장군을 흠모하고 존경하여 장군의 공적을  찬양하기 위해 장군의 집터에 사리탑 방식의 13세기경 삼층석탑을 세운 것이다. 

큰 나무를 주기둥으로 하여 세운 전망대가 보인다. 나무를 헤치지 않고 나무를 이용하여 세운 것이다. 이탈리아 북쪽에  가면 이런 형태의 집들이 많다. 자연을 해치지 않으려는 아름다운 마음이다.

관악산 허리를 타고 둘레길을 걷는다.


한 달 내내 사각과 원만 보다가 온갖 꽃 나무 돌들을 보니 세상이 달리 보인다. 

산 너머에 보이는 사각의 모습들,


보기 흉한 모습의 저 건물들을 우리는 문명이라 부른다.

둘레길 도중에 쉼터 도서함이 있다.  시끄러운 도심을 떠나 자연을 벗삼아 독서삼매경에 빠지는 것도 행복이다.  그러나 난 한 권의 책도 들쳐보지 못한 체 이곳을 지나친다.

숲 속을 거닐면
오직 둘리는 것은 새 소리뿐
귀가 오늘 호강을 한다.

무당골

길을 걷다 보면 여기저기 촛불을 피워놓고 소원을 비는 흔적을 발견한다. 옛 조상들은 우주의 만물에는 모두 영혼이 깃들여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 속에서 인간이 제 스스로를 낮추어 그 기운을 거스르지 않고 위하고 섬기면 모든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자연을 파괴하고 더럽히면서 스스로 불편을 겪고 있다.

산에 올라서면
인간세상 모든 것이
하찮아 보이고

자연의 위대함을
저절로 느낀다.

그러나 다시 인간세상으로 내려오면 그것을 까맣게 잊고 인간이 제일 위대한 줄 착각을 한다.

영혼이 맑고 순수한 아이들
그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그런데 지금 나는
왜 저런 기분을 못 느끼는 것일까?

관음사

신라 말기의 고승 도선국사가 895년 진성여왕 9년에 창건한 관음사다. 법당에 무슨 강연이 있는 듯 신도들 이 둘러 앉아 경청하고 있다.

둘레길을 돌고 사당역에 도착하니 빗방울이 간간히 떨어진다.

이 비는 온 대지를 적시고 온 생명에게 생기를 가져다 줄 것이다.  사람들이 더 이상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백년, 천년 자연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베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