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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누리길

서울의 걷기 쉬운길 안산자락길

언제부터인가 서울에 사람을 위한 길이 생겼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편안한 길이 여기저기 있어 여가와 건강을 함께 챙길 수 있어 참 좋다.

70년대, 80년대, 90년대에는 이런 길이 없었다. 오직 근대화, 산업화, 선진국만 바라보고 경제성장률이 최고의 삶의 질인 것처럼 그렇게 살았다. 토요일, 일요일도 없고 잔업과 철야를 밥 먹듯 했다.  참고 견디면 행복한 날이 온다고, 학창시절에도 참고, 사회에 나와서도 뼈가 빠지도록 참고 견디었다. 정부는 사람이 다니는 길은 모두 없애고 자동차만 다니는 길을 여기저기 만들었다. 하천은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로 오염됐고 대기는 자동차에서 내뿜는 매연과 공장에서 나오는 화학물질로 숨도 쉴 수 없었다. 이제야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어 다행이다.

나는 그 길을 걷는다, 남녀노소뿐만 아니라 장애인도 걸을 수 있는 편안한 길, 안산 자락길을 걷는다.

안산자락길은 순환형이라 원점에서 시작하여 원점으로 되돌아 온다. 총 7km 구간으로 노란색 화살표나 파란색 화살표를 따라 한 방향을 선택해서 걸으면 된다. 여유 있게 한 바퀴 도는데 2시간 30분이면 족하다. 또한 무장애 길이라 어린 아이나 노인은 물론, 휠체어나 유모차 이용자들도 이용할 수 있다

서대문구청

그러나 나는 서대문 구청에서 출발하여 독립문역까지 걷는다.  가는 길에 잠시 길을 벗어나 봉수대도 보고 온다.

홍제천

서대문 구청 옆에는 홍제천이 흐른다. 홍제천은 북한산 수문봉, 보현봉, 형제봉에서 발원하여 종로구, 서대문구를 관통하여 한강으로 흘러가는 지방하천이다.  홍제천 분수대 옆에 설치된 물레방아는 강원도 정선군 백전리에서 100여년 전부터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전통 물레방아를 재현 한 것이다. 전기가 없던 옛날에는 탈곡과 정비, 제분을 할 경우에는 물레방아를 사용하였다. 물레방앗간에는 맷돌, 장독대, 연자방아도 만들어 놓았다.

그 뒤로는 아름다운 꽃 동산을 조성해 놓았다. 봄, 여름, 가을 언제 가 보아도 각 계절에 맞는 아름다운 꽃들을 볼 수 있다. 특히 4월경에 오면 형형색색의 다양한 꽃들을 감상할 수 있다.

꽃 동산에서 꽃 들을 감상하고 안산 자락길로 향한다.

안산 자락길은 장애인, 노약자 등 모든 사람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조성한 명품 숲길이다. 어린아이, 노인, 학생, 직장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일반 평상복 차림의 간편한 운동화를 신고 편안히 길을 걷는다.

안산 자락길 중간에는 너와집 쉼터가 있다. 너와는 지붕을 이는 데 기와처럼 쓰는 재료로서, 널빤지를 쓰는 나무 너와와 켜가 있는 청석판을 쓰는 청석 너와의 두 가지가 있다. 여기 있는 너와집은 나무로 만든 너와 집이다. 자락길 중간에 이런 너와집을 꾸며 놓아 자락길의 밋밋함을 없애고  운치 있게 조성했다.

테크길 중간에는 전망대가 여러 개 있다. 안산의 전망대에서는 서울의 전경뿐만 아니라 북한산의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등 북한산의 거의 모든 것을 조망할 수 있다.

테크길 곳곳마다 항일투쟁으로 민족을 위해 힘쓴 애국지사들과 여성 운동가 등 다양한 인물들의 행적을 기록해 놓았다. 

안산자락길을 걷다 보면 안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을 만날 수 있다. 그 길에 태풍의 영향으로 수 십 년 버텨온 튼튼하게 생긴 한 그루의 나무가 뿌리째 뽑혀 쓰러져 있다. 나약하고 가냘프게 생긴 나무들은 멀쩡히 버티고 있건만 이렇게 큰 나무가 태풍에 힘없이 무너졌다. 우리는 모든 것을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안산은 295.9m 높이의 나지막한 도심의 산으로 안산, 길마재, 기봉, 무악 • 봉화뚝, 봉우재, 봉우뚝, 기산이라고도 하였다. 안산은 산의 모습이 말 안장처럼 생겨서 붙인 이름이고, 길마재는 우마(牛馬)에 짐을 싣는 길마와 같이 생겨서 붙인 이름이다. 또한 마주보고 있는 삼각산 인수봉이 어린애를 업고 나가는 모양이므로, 그것을 막기 위하여 이 산을 어머니의 산이란 뜻으로 모악이라 하기도 하고, 산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서 봉화뚝, 봉우재, 봉우뚝이라 이름했다. 또 기봉은 높고 험한 산이란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일반 등산로다. 바위를 타고 정상으로 간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 무예를 닦는 사람도 만나고 우직한 바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도 만난다. 그 길 곳곳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모습이 보인다. 천만의 인구가 모여 사는 서울, 이곳의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5분이 1이 산다. 그 중에 대다수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다.

이곳에는 봉수대가 있다. 봉수는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로 전하는 군사신호다. 총 다섯 개의 횃불구멍을 통해 상황을 전달하는데 평시에는 봉수 1개, 적이 국경근처에 나타나면 봉수 2개, 국경선에 도달하면 봉수 3개, 국경선을 침범하면 봉수 4개, 적과 아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면 봉수 5개를 올렸다. 이곳에도 봉수대가 5개 있어야 하는데 현재 이곳에는 1개뿐이 없다.

한반도에는 봉수가 다섯 개의 계통으로 되어 있었다. 첫 번째는 함경도 경흥에서 시작하여 아차산 거쳐 남산에 이르고, 두 번째는 동래에서 시작해 청계산 옆 천림산 거쳐 남산에 도착했고, 세 번째는 평안도 강계에서 시작해 무악 동봉을 거쳐 남산 도착했고, 네 번째는 의주를 출발하여 무악 서봉을 거쳐 남산에 도착했고, 다섯 번째는 순천 돌산도를 출발하여 개화산을 거쳐 남산에 도착하는 봉수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봉수대에서 바라보니 북악산의 성곽의 모습이 뚜렷이 보인다. 한양도성길 중 북악산 코스 때 많이 걸었던 곳이다. 그러나 조선은 온 백성을 동원하여 한양을 두 겹으로 철통같이 성곽을 쌓아 놓고도 한 번도 방어를 하지 않았다. 적이 한양 가까이 온다는 밀만 들으면 겁부터 먹고 의주로, 강화로, 남한산성으로 피난부터 갔던 것이다.

다시 산을 내려와 자락길을 걷는다. 길 옆으로는 잎이 없이 피어있는 꽃 무리가 길가에 가득하다. 마치 플라스틱 봉에 조화로 만들어 놓은듯하여 만져보니 실제 꽃이다. 이 꽃의 이름은 꽃무릇이라 한다. 꽃은 가을에 붉은 색으로 피고 잎이 없는 비늘줄기에서 나온 길이 30∼50cm의 꽃줄기 끝에 다발로 달려있다. 

독립문 방향 표시판을 따라 자락길을 내려오니 붉은색 벽돌 담이 보인다. 이곳이 서대문 형무소다. 일제시대의 이름은 경성감옥이었으나 해방 후에도 철거하지 않고 서대문감옥, 서대문 형무소란 이름으로 정치범들을 투옥시키고 고문했다. 그러나 이제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이 되었다. 일제의 항거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고문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한 많은 곳이다. 민족을 위해 일제에 항거하다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신 수많은 애국지사의 영혼의 외침이 들리는 듯 하다. 지금 우리는 선열들의 고귀한 뜻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우리는 살고 있는지.

서대문 역사관을 나와서 독립문 방향을 따라 걷는다. 이 주변은 독립공원이다. 원래의 영은문을 철거하고 그곳에 독립문을 세웠다. 그러나 그 양식은 우리의 전통양식이 아닌 프랑스의 개선문을 모방하여 지었다. 그리고 이 지역이 독립을 상징하는 지역이 되었다. 독립협회를 이끌었던 서재필 선생의 동상도 여기에 있다.

서대문구청에서부터 시작한 안산자락길, 2시간 정도의 짧은 코스였지만 모처럼 좁은 사무실에서 벗어나 자연과 하나가 된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많은 것을 느낀 역사의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