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을 쳐다보니 고개가 꺾어진다.
높고 높은 빌딩 숲을 지나 꽃피는 동백섬에 왔다.
오색 머리를 풀어헤친 인어의 구슬픈 고동피리 소리에 홀려 동백섬에 왔다.
섬인데 배는커녕 다리 하나 건너지 않고 동백섬에 왔다. 동백섬은 원래 섬이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에 걸친 퇴적작용에 섬은 육지와 이어져 육계도가 되었다.
동백이 울창하다. 바닷바람 온몸으로 맞으며 짙은 동백향기를 뿜으며 동백은 왜 거기에 피어 있는가? 붉고 붉은 입술로 단장을 하고, 검푸른 초록 옷을 입고 엄동설한 한겨울에 옛 님을 기다리는가?
둥근 지붕의 건물이 있다. 누리마루 APEC 하우스다. 2005년 APEC 정상회담 회의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동백섬에 세운 건물이다. 정자 형식으로 된 이 건물의 이름은 누리마루다. 세계의 정상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누리마루에 모인 정상들은 역대 APEC 정상회의장 중 가장 풍광이 뛰어난 곳이 여기라고 말했다.
하얀 등대가 있다.
등대.
등대를 바라보면 망망대해를 향해 떠나보고 싶다.
어딘가에 존재할 또 하나의 등대를 찾아서.
신라말 유학자 최치원은 가야산으로 가던 도중 이곳 경관에 매료되어 본인의 아호를 딴 '해운대'를 암석에 새겼다. 그래서 해운대란 지명이 생겨났다.
최치원 선생의 영혼을 빌어와 빙의되어 해운대를 바라본다.
파도와 바람과 폭풍에 견뎌온 바위의 형상, 보일 듯 말듯한 수많은 섬들, 검푸른 잎새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붉은 동백과 해운대 특유의 환상적인 구름이 어우러져 일대 장관을 이룬다.
멀리 바위 위에 인어가 상념에 잠겨있다. 황옥공주 인어상이다. 이 인어상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깃들여 있다.
수만 리 밖 마란다국에 황옥공주가 살았다. 공주는 어느 날 바다를 건너와 이곳 무궁나라 은혜왕의 왕비가 되었다. 고국의 땅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황옥 왕비는 해가 갈수록 고국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옆에 있던 거북이 안타깝게 여겨 황옥 왕비에게 황옥을 주었다. 그리고 보름달이 뜨는 날 황옥을 꺼내어 달에 비추어 보라고 일러 주었다. 보름날 황옥 왕비가 황옥을 달에 비추니 눈앞에 꿈에 그리던 고국의 아름다운 달밤이 나타났다. 황옥 왕비는 밤마다 인어 공주가 되어 바닷속을 헤엄쳐 고향으로 갔다.
어느 향토사학자는 전설 속 황옥 공주는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로, 금관가야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이라고 한다. 수만 리 떨어진 인도에서 해가 뜨는 마지막 땅인 가야에 시집을 온 허황옥 황후는 얼마나 고향이 그리웠을까? 허황후의 마음은 밤마다 인어가 되어 저 멀리 인도의 야유타국에 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출렁거리는 출렁다리 위에서 출렁거리는 파도를 바라보며 동백섬 산책로를 한 바퀴 돌았을 때는 이미 해는 지고 땅거미가 드리워져 있었다.
갑자기 두고 온 천 리 밖 고향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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