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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

서울둘레길 1코스 - 수락·불암산코스

조선은 왕이 국가를 소유하고 모든 것이 왕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왕정국가였다. 모든 백성은 왕이 지나가면 감히 얼굴을 들어 왕을 쳐다볼 수 없었다. 백성과 신하는 오직 왕을 위해서만 존재하였다. 서울은 조선을 소유하고 통치했던 그 왕이 살았던 곳이다. 왕이 잘못되면 곧 나라가 없어지는 것과 같았다. 그 왕을 보호하기 위해 서울에는 왕이 사는 궁궐을 둘러싼 내성과 관청과 양반들의 거주지를 둘러싼 외성을 쌓았다. 일반인이 서울을 출입하려면 성문을 통과해야만 가능했고, 밤에는 도성문을 닫았다가 새벽에 열었다. 서울 둘레길은 서울의 외성인 외사산을 연결하는 157km의 순환코스다.

그 서울둘레길의 첫 번째 코스인 수락.불암산 코스다. 수락, 불암산 코스는 도봉산역 2번 출구 앞에 있는 서울창포원에서 시작한다.

서울창포원 관리실에서는 구간마다 설치되어 있는 스템프를 찍을 수 있는 용지와 서울둘레길 안내자료를 무료로 배포한다. 그곳에서 안내책자를 받아 들고 둘레길의 첫발을 내딛는다.


서울창포원은 총면적 52,417㎡에 꽃창포를 비롯한 붓꽃을 주제로 한 서울시의 생태공원으로서 12개의 테마로 구분 조성되어 시민들에게 생태교육 및 여가와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서울 창포원에 눈이 내린다.


꽃 창포는 볼 수 없지만
하얗게 내린 눈을 밟으며
서울창포원을 지나간다.

상도교 아래에는 중량천이 흐른다. 60년대까지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60불로 세계 최하위의 빈민국이었다. 거리에는 거지들이 넘쳐났고 한국전쟁때 부상을 입은 군인들과 고아들이 넘쳐났다. 그 가난에서 벗어날 길은 오직 수출뿐이 없었다. 중량천은 70년대 수출주도 산업으로 인하여 수많은 염색공장에서 쏟아내는 오염수로 죽음의 하천이었다. 이곳을 지나갈 때면 코를 막고 지나갔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세월이 지난 지금 수 년 동안의 환경정화 작업으로 중량천은 물고기가 노닐고 어린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깨끗한 하천으로 변했다.

백운동 계곡을 지나 노원골로 향한다.

 

나무는 살기 위해 자신에게 영양분을 공급해 주었던 수많은 잎새들은 매정하게 모두 떨쳐 버렸다. 이제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나목이 되어 기나긴 겨울을 준비한다,

 

전망대에 서면 남산의 서울타워, 북한산, 도봉산이 한눈에 보인다고 했건만 눈 구름에 싸여 한치에 앞도 볼 수 없다.

 

낙엽을 밟으며 인생을 생각한다.


지구가 탄생해서부터 억겁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수많은 생명체가 있었다.


그 생명체는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생태계를 만들어 지금까지 지구를 지탱해 왔다.


나는 지금 세상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가? 어떤 거름이 되어야 하는가.

 

어떤 난관에도 그 자리에 꿋꿋하게 지키고 있는 바위를 바라보면서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왔는가? 그 가치관은 올바른 것이었나? 그 가치관은 꿋꿋이 잘 지켜왔는가.

마지막 남은 잎새를 바라보면서...

채석장 전망대

 

 

난이도 상인 덕릉고개를 우회하여 마을 길로 내려간다. 이곳엔 아직도 단풍이 남아있다.

멀리 불암산이 보인다.


정해진 길이 있기에 이제 저 길을 가야 한다. 인생도 태어나면서 내 의지가 아닌 거대한 힘에 이끌려 미리 정해진 운명을 따라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에게 그 힘보다 더 큰 의지가 있다면 그 운명은 비껴갈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 한 말이 생각이 난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공원에 폭포라고 팻말이 있다.
그러나 겨울이라서 물은 없다.

지금부터는 불암산 코스다.
불암산이 조금 더 가까이 보인다.

철쭉동산에 서울둘레길 스탬프가 있다.
스탬프를 찍어 발자취를 기록한다.
봄철에는 이곳에 철쭉이 가득 피어 있겠지.

마치 사람이 깎아 놓은 듯한
망치 모양의 이름도 없는 바위가
길가에 버티고 있다.

 

이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겠지.

누군가 소원을 빌며
쌓아 올린 돌탑
그 정성만큼
소원이 성취되기를

돌을 하나 얹어놓으며

기원한다.

불암산을 오르지 못했지만
좀 더 가까이 본다.

커다란 두 개의 바위 사이로
두 마리의 꼬리달인 짐승이
오르는 듯 보인다.

이곳이 공릉동이다.
공릉동은 원래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에 속해있었다. 서울시로 편입될 당시에는 서쪽에 공덕리, 동쪽에 태릉, 강릉이 있고, 그 안에 능골이라는 두 개의 마을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태릉동으로 정했다가 공덕리 주민들의 반대로 동명을 정하지 못하다가, 두 마을 주민들의 합의에 의하여 공덕리의 공자와 태릉의 릉자를 따서 공릉동이라고 했다.

학교 담장에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림의 아이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 정감이 간다.

불암산 등산로 초입

화랑대역 앞에서 또 스탬프를 찍는다.

이곳에서 1km만 가면 육군사관학교가 있다. 육군사관학교 사관생도들이 길을 걷고 있다. 

 

이곳이 서울둘레길의 1코스인 수락.불암산 코스를 마지막 지점이다.


난이도 상인 구간인 덕릉고개를 우회하기 위하여 또 다른 우회 둘레길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 우회도로를 걸어서 그런지 난이도 상인데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지난번 다친 허리가 완쾌되면 덕릉고개길도 한 번 걸어보고 싶다.